세 아이에게서 배운 삶의 의미
어릴 적 제 엄마는 매일같이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우리가 아주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죠.
하지만 성인이 되어 한 발짝 떨어져 엄마의 삶을 바라보니, 우리는 부유하진 않았지만 제가 생각했던 만큼 가난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계절마다 옷을 사 입으셨고, 우리 집 밥상에는 매 끼니 생선이나 고기 반찬이 올랐으니까요.
그런데 왜 저는 그렇게까지 '가난하다'고 느꼈을까요? 그저 엄마의 말 한마디에 어린 마음이 너무 쉽게 흔들리고 믿어버린 걸까요?
'가난의 기준'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요. 돌이켜보면, 그만큼 주관적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그 사실을 더욱 생생하게 실감하고 있어요.
우리 집 첫째와 막내는 물욕이 많은 편입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그것을 마음껏 취하지 못할 때면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느끼는 듯해요.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때로는 더 깊은 결핍과 우울을 느끼기도 하죠. 옷을 아무리 사줘도 늘 입을 옷이 없다고 투정하는 두 아이를 보면 가끔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 둘째는 정반대입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 아이의 말입니다. 정말 쌀이 떨어져 없던 시절도 있었는데, 둘째는 그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아무거나 입고 아무거나 먹습니다. 그저 굶지 않고, 헐벗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 말이죠.
무언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형편상 어려울 것 같다고 미안해하면, "알겠어" 하고 쿨하게 포기하곤 해요. 최근 운동화 밑창이 닳아 하얗던 운동화가 까만 운동화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운동화 하나 사자" 했더니, 세탁해서 더 신겠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했죠. 그 아이는 심지어 속옷도 형에게 물려받아 입습니다. 새 옷을 사준 기억이 거의 없지만, 형 덕분에 입을 옷은 늘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둘째가 여자 친구가 생긴 후, "너 왜 매일 같은 옷만 입어?" 라는 말을 듣고 와서는 처음으로 "옷 좀 사줘" 하더군요. '그래, 사줄게!' 하고 골라보라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직 고르지 못한 채예요.
반면 막내딸은 또 다릅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운동화도 사고 싶고, 기모 바지도, 예쁜 외투도 사야 한대요.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들을 가득 담아두고,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심지어 한 달이 넘도록 결제를 못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기다리고 또 미루는 것이죠.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쓰는 두 아이를 보며, 가끔은 이런 모습들이 저를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가난은 돈의 많고 적음보다, 결국 '마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저는 아이들을 키우며 종종 깨닫습니다. 가진 것의 양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욕망하느냐, 그리고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우리 삶의 풍요를 결정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