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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Oct 19. 2023

배트맨이 캔디가 된 까닭

<지극히 사적인 곁눈질>

  여러분은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히 반려동물의 이름이라면! 


  * 

  저녁 어스름이 빠르게 다가왔고, 빗방울이 제법 굵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공원을 내려다보며 경치멍 중이었다. 비가 내린 탓인지 오가는 사람은 없었고 키 큰 나무들의 잎이 무성한 가지들만 바람에 나부꼈다. 나무들 틈에서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코코야, 코코야~ 어딨어, 코코야~     


  나도 모르게 긴장한 채 할아버지를 눈으로 쫓았다. 반려견을 잃어버린 걸까. 이미 한참 찾으러 다닌 건지 힘없는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할아버지는 위태로워 보였다. 할아버지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공원길을 내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같이 찾아다니고 싶었다. 저녁은 빠르게 번졌고 비는 점점 거세졌다. 할아버지의 슬픔과 주인을 찾아 헤매고 있을 두려운 눈동자가 예상되어 가슴이 아렸다.      


  문득 작년 6월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내 뒤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반려견 사강이와 캔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캔디의 원래 이름은 배트맨이었다. 조카가 반려견을 떠나보낸 언니를 위해 선물로 데려온 아이인데, 우여곡절 끝에 내가 맡아 키우게 되었다. 데려올 때 이름은 쿠키였고, 쿠키는 너무 쉽게 부서질 것 같아 다른 이름을 짓기로 했다. 비슷한 이름을 찾다 보니 달콤하고 단단한 캔디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남자애였고 눈 양옆으로 자란 검은 털이 배트맨 같기도 하고, 조커 같기도 해서 배트맨과 조커가 후보 이름으로 거론됐다. 


  “저 그런데요, 조커는 좀... 발음을 잘못하면, 조 밑에 시옷이나 지읏을 붙인 것처럼 들리면 곤란하...”


  이건 또 뭔 소리야? 다들 와아 웃었고, 한참 만에 상황 파악이 된 나는, 그날 처음 본 조카의 남자친구 등을 세차게 때렸다. 결국 배트맨으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      

  그땐 그 이름이 나중에 재앙같은 놀림감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은 캔디인 배트맨이 10개월쯤 됐을 때다. 엄마가 고관절을 다쳐 꼼짝도 못했기에 나는 딸과 반려견들을 데리고 자주 엄마집을 찾아갔었다. 그날도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집은 언덕배기 아래쪽에 있었는데 언덕길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고 길었다. 


  우리는 반려견들을 엄마에게 맡기고 간식을 사러 나왔다. KFC에서 햄버거와 커피와 아이스초코를 사고 슈퍼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간식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구야 얼른 좀 와봐라. 개들이 나가버렸는데 사강이는 들어왔고 작은놈이 아직 안 들어왔어. 벌써 한참 됐는데 어디로 갔을까.”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엄마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강아지들은 문을 스스로 열 수 없는데? 엄마와 근처 사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간호사가 전화 왔는데, 주사를 놓기 위해 엄마 집에 갔고, 문을 열자마자 강아지들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고. 사강이는 누군가 잡아서 들여보냈고 나머지 한 마리가 사라졌는데 벌써 시간이 꽤 됐다고.   

   

  언니까지 지금 뭔 소리야? 언니는 손님이 많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걘 아직 애긴데, 벌써 20분이나 지났다고? 간식을 담은 바구니를 집어던지고 슈퍼에서 뛰쳐나왔다. 음료와 햄버거가 담긴 봉투는 손에 그대로 들린 상태였다. 엄마 집 쪽으로 뛰었다. 딸이 울면서 내 뒤를 따라 뛰었다. 찻길 두 개를 건너 언덕길이 있는 동네로 접어들었다. 누가 봐도 정신이 반쯤 나간 모녀로 보였을 것이다. 골목 사거리에서 엄마집이 있는 왼쪽으로 몸을 꺾자 누군가 소리쳤다.  

    

  “쪼끄만 강아지 찾아요? 아까 저 위로 뛰어가던데?”

  “언덕 쪽으로요?”

  “하도 빨라서 다들 못 붙잡던데요.”


  딸에게 할머니 집 쪽을 찾아보라고 한 뒤 나는 언덕 위쪽으로 뛰었다.     

 

  “배트맨! 배트맨! 배트매애앤!”


  언덕길은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간이 강아지 행방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상점이 끝나는 지점부터 주택이 이어졌고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언덕길은 너무도 가팔랐고 2백 미터는 족히 뛴 탓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계속 나를 찾고 있을 강아지가 너무도 걱정이 되어 멈출 수 없었다.   

  

  문제는 강아지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조그만 강아지 못 보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다시 골목이 울리도록 이름을 부르며 위쪽으로 뛰었다.    

 

  “배트맨! 배트맨! 배트맨!”

  “와아- 배트맨이래. 우리도 가보자.” 

  “배트맨!”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 아이와 한 여자아이가 깔깔대며 내 뒤를 쫓아왔다. 아이들은 나를 따라 배트맨을 외쳤는데 마치 내가 아이들을 인솔하여 놀이는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얘들아 조그만 강아지 못 봤니?”

  “저쪽으로 가는 거 봤어요.”   

 

  한 아이가 왼쪽 골목을 가리켰다. 마침 그쪽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났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강아지 소리는 왼쪽 골목 첫 번째 집 대문 안쪽에서 났지만 다시 들어보니 목소리가 약간 성견처럼 들렸다. 나는 대문에 대고 배트맨을 외쳤다. 아이들이 다 같이 배트맨을 외쳤고 나는 대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왜 그러냐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혹시 모르는 강아지가 들어왔냐고 물었다. 안쪽에선 자기네 강아지한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다. 짖는 소리가 확실히 달랐다.      


  “얘 강아지 이쪽으로 간 거 봤다며?”

  “몰라요. 아까 어떤 아저씨가 데리고 가던데요?”

  “뭐? 어떻게 생겼는데? 하얀 털에 검은 털 있는 거 맞아?”

  “아뇨? 노란색이던데...”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언덕을 계속 오를지 주변 곳곳을 뒤져야 할지 고민됐다. 그사이 두세 명이 더 늘어난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와와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다.   

   

  “너희들, 조그만 강아지 보면 절대 놓치지 말고 꼭 붙잡고 있어.”    

 

  나는 다시 골목이 울릴 정도로 이름을 부르며 위쪽으로 뛰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찢어질 듯 통증이 몰려왔다.     

 

  “배트맨! 배트맨!”     


  아이들이 계속 나를 따라오며 배트맨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지나가는 몇몇 어른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킥킥대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웃긴다. 배트맨 놀이하나 봐.” 

  “야 꼬마야, 그럴 땐 손가락을 이렇게 해야지, 봐봐 이렇게.”     


  남자가 한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인 순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몇 초 사이에도 강아지는 끝없이 앞을 향해 뛸 것이고 점점 나와 멀어질 테니까.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간신히 힘을 내어 다시 위쪽으로 뛰었다. 머리카락과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셔츠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이들이 다시 쫓아왔다.   

   

  “저리 가! 너희들 쫓아오면 혼낼 거야! 저리 가라고!”     


  나는 아이들에게 따라오지 못하게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골목과 건물 틈새 곳곳을 살펴보며 계속 언덕을 올랐다. 마치 가파른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나는 엉엉 울면서 다시 배트맨을 외치고 있었다. 시간과 거리가 너무 멀리 지나가사 이젠 찾는 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어디선가 진짜 배트맨이 나타나 내 강아지 배트맨을 제발 찾아주었으면.      


  그날 배트맨은 그 작고 연약한 다리로 언덕길을 끝까지 올라가, 산 밑으로 난 찻길을 돌아 내리막을 거쳐, 8차선 도로 중앙선을 앞만 보고 뛰고 또 뛰었고, 나와 극적으로 만나기까지 2킬로 넘는 거리를 앞만 보고 뛰었던 거다. 


  배트맨을 끌어안고 왕복 8차선 차도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차가 뒤엉켜 여기저기서 빵빵대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는 배트맨을 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배트맨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할딱거리고 있었지만 나와 같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트맨은 그날 이후 결국 캔디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남자아이인데도 불구하고. 

  내 곁에서 쌔근쌔근 잠든 작고 이쁜 녀석. 


  그날 중간에 포기했다면 저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하다, 그런 생각. 

  또한 그날 배트맨을 외치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정말이지, 

  끔찍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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