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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숲 Nov 16. 2024

유령 놀이1

시 발표/ 계간 <시에>

   유령 놀이1   


  손바닥에 희미한 빛을 쥐고 

  중환자실로 들어간 애인은, 


  너무 쉽게 돌아왔다      

  새벽바람으로 빗방울로 보도블록 틈새의 풀잎으로 한밤의 휘어진 골목으로, 


  헐거워진 문틈으로 현관의 검은 우산으로 마모된 칫솔로 

  짝 잃은 양말로 베갯잇 머리카락으로

     

  애인은 내 눈을 파고들다 

  심장 안 파닥거리는 새가 되었다     

  며칠 만에 찾아낸 애인은 우산을 들고 계단 아래 쪼그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빗방울에 걸린 거미줄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거미가 빗방울을 털어내는 동안 애인의 머리와 어깨가 빗물에 잠겼다    

 

  집을 잃었어


  수시로 숨어 버리는 애인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바람을 쫓던 눈동자가 좁은 골목을 비척이며 걸었다    

 

  가파른 절벽이 애인을 앞섰고

  나는 애인의 뒤를 쫓는 절벽이 되었다     


  애인은 한밤의 숲에서 유령놀이에 빠졌고

  풀벌레가 된 나는 

  가을 내내 애인의 이름을 부르며 

  풀숲을 떠돌았다     




  유령놀이2     

     

  내 부고 소식을 알렸다      

  몇몇은 모른 척 

  몇몇은 왜 죽었는지 따져 물었고 

  또 몇몇은 장례식장으로 찾아왔다   

  

  친구1: 너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어  

  친구2: 아직 넌 차례가 아닐 텐데   

  

  친구1: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친구2: 계절도 저절로 오잖아     


  꽃잎처럼 한 잎 한 잎 떨어지기 싫었어

  나는 울먹이며 말했고     

  한 번에 똑? 


  동백꽃의 죽음은 품위를 유지하지   

  한 번에 목을 베이는 건 잔인해  

  

  우리는 빈소 한켠에 앉아 

  서로의 죽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죽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의 차이에 대해 

  우리는 좀더 연구해 보기로 했다   

  

  매일 포장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친구는 

  식당의 탁자 사이를 뛰어다니며 먹을 걸 찾았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의 눈동자에선 

  빛이 푸르게 쏟아졌는데 마치 

  먹는 행위야말로 삶을 증명한다는 듯     


  아직도 넌 살아있다고 믿는 거니    

 

  나는 왜 계속 잠이 올까

  죽어서도 잠이 쏟아지는 게 맞는 걸까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내 배를 자근자근 밟아댔다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자꾸만 깊은 잠 속으로 빨려들었어    

 

  울어도 돼?    


  꿈속인지 꿈 바깥인지 

  어디선가 희미하게 애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숲

  2023 계간 <시와산문>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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