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못소 Nov 16. 2017

죽은 자들의 비트(bit)세계

제 3회 글못소의 날, 비트(bit) 세계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DGT00033612131BA

비트(bit) 세계 : 제3회 글못소의 날

* 글 못 쓰는 소설가란?어렸을 때 판타지 책을 읽으면서, ‘이런 재미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먹고 소설을 써보려고 종이 위에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었습니다. 그런데 글자는 종이 한 장을 채 채우지 못했습니다. 글을 못 쓰는 자신을 보며 소설가의 재능이 없구나 싶어서 꿈을 포기했었습니다.그렇게 소설가 꿈을 포기한 채 공대를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백화점 판매직으로도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한 줄 알았던 꿈은 마음 한 편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미련은 길게 이어져 결국 저를 ‘글 못 쓰는 소설가’로 만들었습니다.‘글 못 쓰는 소설가’는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쓰지 못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한 영원히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을 소설로 써 내려 갔고, 그렇게 탄생한 책이 [글 못 쓰는 소설가]였습니다.처음으로 완성한 소설책을 보며 든 첫 번째 감정은 ‘허탈함’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꿈을 이루기는 쉬웠고, 그동안 꿈을 못 이룬 이유는 자기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소설에 대한 편견,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현재는 '글 못 쓰는 소설가'가 저 말고도 다른 작가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도 처음에는 저와 같은 고민으로 글을 쓰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글 못 쓰는 소설가'라고 말하며 글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우리가 계속 '글 못 쓰는 소설가'라고 말하는 것은 필력과 무관합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남들보다 특출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스스로 발목을 죄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글 못 쓴다고 생각하고, 순수하게 글 쓰는 것을 즐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 글 못 쓰는 소설가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지금 소설을 쓰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으신가요?스스로 발목을 죄는 것을 내려놓고, 글 못 쓰는 소설가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즐겁게 글을 쓰는 일상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알려드립니다 *글못소의 날은 글 못 쓰는 소설가들이 모여, 각자 쓴 단편 소설을 쓰는 날입니다. 기본 주제는 prologue 내용이며, 각 소설의 세부 세계관 및 설정은 다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Prologue >먼 미래에는 기술이 발전하여, 현실 세계가 아닌 0과 1 비트(bit)로 이뤄진 컴퓨터계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럼 비트(bit)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내가 상상하면 무엇이든 이뤄지는 곳일까요?아니면 돈은 비트(bit) 세계에서 벌고, 소비는 현실 세계에서 하게 될까요? 만약 당신이라면, 비트(bit) 세계에서 어떤 걸 하고 싶습니까?글 못 쓰는 소설가들의 세번째 이야기는 '비트(bit) 세계'입니다.

book.daum.net

 


죽은 자들의 비트세계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부 금실이 좋은 편이었다. 오십이 넘어서도 외출할때며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다. 그 외의 뽀뽀하거나 포옹하는 스킨십은 없었지만, 어디를 가도 손은 꼭 잡고 걸으셨다. 

전화를 받고 도착한 병원 침대 위에서도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머니가암으로 투병 중이라 아버지는 병간호하고 있었는데, 침대에는 두 분이 같이 누워있었다. 




홀로그램이 발달하고 일반 가정집에도 인공지능 가정부가 있는 시대이지만, 고칠수 없는 병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암은 진화를 거듭했고, 진화한암은 결국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다. 진화한 암이 공기 중으로도 퍼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병실에서 생활한 아버지의 목숨도 같아 거두었다. 다행인 건두 분이 마지막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는 점이랄까. 죽는게 무엇이 좋다고 웃는지, 남겨진 우리는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자식속도 모르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마지막 얼굴이 야속하기만 했다. 


장례식은 간단히 치러졌다. 바빠서,거리가 멀어서 못 오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홀로그램으로 대신 인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호상이라 칭찬하고, 나에게도 복이 많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칭찬받은 나는 뭐가 복이고, 뭐가 호상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부모님이 같이 돌아가신 게 호상인가? 아픈 부모님이일찍 돌아가셔서 호상이라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병원비를 저축할 수 있으니 좋다는 건가?




장례식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났다. 시간은 다시 흐르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다른 날과같은 날. 어제와 같은 날. 변화가 없는 일상인데 눈은 초점을잃고 어릴 봐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하늘은 파랗고, 형형색색간판은 화려한데, 내 눈은 시력을 잃은 것처럼 무채색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인 지형이 달려와 안겼다. 해맑게 웃는 얼굴을보니, 그제야 잊고 있던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이때만큼은무채색 세상에 빛이 들어온다. 눈에는 생기가 돌아오고, 지형이랑내일 죽을 것처럼 온몸을 바쳐 놀아주었다.


저녁에 놀아서 그런지 지형이는 코를 골며 잠들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아니, 않은 건 아니고 못 놀아 주셨다. 내가 어릴 때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는 남들보다 길게일해야 했다. 


어른의 사정을 오르는 어릴 때는 바쁜 아버지가 미웠다. 놀아주지 않아서 미웠고, 미움은 어색함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부모님에게 잘해야 하는 건 알지만, 어색해서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냥인사만 하고 TV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베개가 아닌 내무릎을 찾아 누웠다. 어색한 부자 관계의 대화를 무릎베개 하나로 이루어졌다.




다 커서는 부모님에게 잘하려고 노력했었다. 어린 시절의 공백을 채우기위해 더 애썼고, 더 많이 해드리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효자소리를 곧잘 들었고, 나 때문에 와이프가 많이 힘들겠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도 부모님의 빈자리를 볼 때면, 못 해 드린 것이 떠올라 눈시울이붉어졌다. 


“여보, 당신 정도면 할만큼 했어요. 이렇게 힘들어하면 어머님, 아버님이 어떻게편히 가시겠어요? 이제 보내드려요.”


지형을 보며 홀로 앉아 있자, 아내인 유나가 한 마디 던졌다. 머릿속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갔었나? 어찌 이리도 내맘을 꿰뚫어 보는지 모르겠다. 혹시 나도 모르게 뇌파 번역기를 몸에 붙여 둔 것은 아닐까?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저녁, 유나가 방으로 불렀다. 유나는 조용히 테이블 모니터를 켜고,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사이트 배경에는 비트 세계에서 같이 놀고 있는 가족들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부모님을 보내 드리는 게 힘들면,이곳에 가보는 건 어때요? ‘죽은 자들의 비트 세계’라는사이트인데, 죽은 사람의 온라인 자료를 토대로 비트 세계에서 형상화해주는 회사예요. 

지금 당신이 계속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는 건 마음속에 한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가상이지만, 컴퓨터 속 세상에서라도 못 해 드린 걸 해드리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어요?”


유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사이트에 떠 있는 영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영상화면은 현실 세계가 아닌 비트 세계 속 영상이었다. 라이브라고 적혀있는 걸 보니, 현재 사용 중인 사용자의 비트 세계 중 하나를 보여주는 듯하다. 화면속 가족은 화목해 보였다. 서로 웃으면서, 모두 다 살아있는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고인일 것이다. 나처럼고인이 된 분을 잊지 못한 사람이 비트 세계에 들어가, 생전에는 같이 못 했던 것을 하는 것 같았다. 


영상 화면의 중년 부부는 어느새 우리 부모님 얼굴로 바뀌어 보였다. 부모님도비트 세계에서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줄 수 있는 걸까? 


“바로 다음 주 주말에 가도 될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지금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주말에 내가 없으면 유나 혼자서 지형이를 돌봐야 하지만, 그녀는개의치 않고 보내주었다.


“빨리 털고 일어나요. 당신의가족은 우리도 있잖아요?”


맞다. 나에게는 또 다른 가족이 있다. 나는 부모님의 죽음에 슬퍼하며, 현재의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걸까? 나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도 있지만, 유나의 말을 들으니더 결심이 섰다. 지금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감정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이다. 




회사 사무실은 깔끔했다. 전체가 화이트로 덮여 있어서 병원을 연상케했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부모님 정보를 입력했다. 부모님정보를 모으고, 형상화하는 데에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신체검사를 했다. 간혹 비트 세계에 빠져, 현실로 돌아오는 걸 거부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위급 상황을 대비하기위해, 신체 검사와 수술 동의서를 쓰듯이 계약서도 하나 작성했다. 만일에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태를 대비한 내용이었다. 


2시간 뒤에는 안내된 곳은 침대가 놓인 방이었다. 침대 주변에는 각종 의료 기기가 놓여 있었다. 병원과 유사하지만, 기계 형태가 다른 걸 보면, 모두 내 몸을 비트화 하는 데에 사용되는기계 같았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의 지도로 조수들이 기계를 몸에 부착했다. 기계는내 몸을 발끝부터 서서히 올라오며 스캔했다. 스캔하는 불빛이 올라오는 걸 보며, 내 눈은 천천히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흰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머릿속에는 사람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비트 세계에서 물체를 형상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하나씩 집을 만들고 하늘을 만들었다. 몇 번 하니, 비트 세계에서 어떻게 물건을 만드는지 익숙해 졌다. 나를 지켜보는사람도 괜찮다고 판단했는지, 곧 부모님을 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부모님이 앞에 나타나실 겁니다. 이후로는 저희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을 겁니다. 류진성 님이 ‘이제 집에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비트세계는 다시 하얗게 변하고 몸이 현실 세계로 돌아올 겁니다. 그럼부모님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마지막 안내를 끝으로 눈앞에 부모님이 등장했다. 그들은 죽기 전, 병실에 손을 잡고 있던 얼굴 그대로 나타났다. 침대 위에서 보았던미소를 뜨고, 서로 손을 잡고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귓가에 닿자,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꼈을까? 이 질문은 스스로 던져도 답을얻을 수 없었다. 유나의 배려도 비트 세계에 와서, 부모님을만났지만, 딱히 무엇을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처럼, 집에서 같이 TV를 보고 있다. 특별한 여행지를 가야 할까? 화려한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할까? 머리는 복잡했지만, 마음은 차분했다. 그냥 이렇게 부모님은 옆에 앉은 채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보고 싶었니?”


컴퓨터 자료를 모은 거라 했는데, 눈앞의 부모님은 평소에 잘 하지않았던 말을 했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질문임에도 가짜라는 의심은 들지 않았다. 죽은 뒤에 혼령으로 다시 돌아온 부모님처럼 느껴졌다.


“……네, 보고 싶었어요.”


과거라면 안 했을 말이 입에서 나왔다.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하지못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아니면인공지능이 멋대로 하는 것인지, 차마 못 했던 말이 술술 나왔다. 어머니는아들이 평소와 다른데, 꼬투리 잡지 않고 눈을 지그시 마주쳤다.


“우리 아들이 왜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까…… 못한 말이 있었니?”


어린 시절은 공백기였지만, 성인이 되고 경제력이 생기면서,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여행도 같이 가고, 주말마다 자주 찾아뵙기도 했다. 그런데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마음의 허전함이 생겼다. 부모님이 그리웠고, 그립고, 그냥 그리웠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계속 보고 싶었어요.”


시선을 계속 TV로 두고 있던 아버지는 손만 내밀어, 꼭 쥐여 주셨다. 아버지의 손은 봄날 햇빛처럼 포근하면서 따뜻했다. 어머니도 옆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같이 TV를 봤다.


TV 프로그램이 끝나고 부모님은 같이 일어섰다. 두 분은 다시 서로의 서로 잡았다. 그리고 병원에 누워서 짓고 있던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우린 가야 해.”


소파에 앉은 나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같지만, 목은 눈물을 참느라 꽉 잠겨 아무 말도 뱉지 못했다. 마지막을예감한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더는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몸을 죄었다. 병원에서는 잡지 못 했지만, 여기서는 잡으면 잡히지 않을까? 가지 말라고 부탁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살아 있을 때 부모님이 그랬던것처럼, 내 칭얼거림을 다 받아주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든지 이곳에 있을 거야.보고 싶으면 또 와. 알았지?”


내 맘을 꿰뚫어 본 듯, 어머니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서서히 정상 박동으로 돌아갔다. 불안했던혈관과 세포는 다행이라는 듯 격렬한 운동을 끝냈다. 비트 세계라는 걸 알고, 그들은 진짜 영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모님의 혼을 만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안도감. 이는갑자기 사라진 보금자리로 불안해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너의 보금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네, 다음에 또 뵈러올게요. 이제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키워드를 말하자 부모님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집도 같이 사라지며처음의 하얀 바탕만이 남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어보세요.]


안내 음성은 타이밍 맞게 다시 들려왔다. 그들 말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였다.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허전했을까? 부모님을 보고 나왔는데도 그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가족이 있고, 내가 책임져야 할 아들도 있었다. 새로운 가족이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줄 만도 하건만, 가족조차도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가 있었던 것일까?


부모님을 만나서 대화도 했지만, 무엇이 필요했던 건지는 여전히 잘모르겠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힘이 들어갔다. 운전하며노래를 틀고,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가족인 유나와 지형은 문밖에 나와 나를 반겼다. 가족은 여전히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편하게웃음이 나왔다.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지자, 새로운 가족을대하는 마음도 편해졌다.


나와 평생을 같이할 아내가 주는 편안함, 나를 애정 가득한 눈으로보는 아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나를 지켜주는 부모님이 있었다. 나를 둘러싼 가족을 보며, 나는 집이 주는 포근함을 온몸의 피부로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모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서도죽어서도 말이다. 그들의 영원히 내 곁에 있어서 나는 완전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 끝 -

매거진의 이전글 얼굴 없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