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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Sep 06.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59 - 이상한 대화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아침으로 미음과 바나나를 야무지게 먹는다. 사람들은 어찌나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지 항상 참견을 한다. 경관 유동식을 할 때는 피딩법에 대해서 팩을 데워야 한다니 속도가 어떴니 이런 말을 했던 터라 콧줄만 빼면 그런 관심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씀은 끊임이 없었다. 콧줄을 빼고 미음을 먹이니 이제는 죽은 언제 먹냐, 밥은 언제 먹냐부터 이런 걸 먹여라 저런 걸 먹여라 새로운 간섭이 생겨났다. 여기 있는 한은 귀 따가운 말들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원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매일 같이 듣다 보면 불편해진다. 결국은 성화에 못 이겨 담당 전문의에게 죽은 언제쯤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담당의는 내 말을 듣더니 미음을 삼키는데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내일부터 죽으로 변경해 보고 잘 삼키는지 지켜보자고 하였다. 그 무엇보다도 앞으로는 더 이상 죽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재활 시간에는 곁에 없어도 되지만 코끼리를 돌리는 시간에는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수동 자전거라서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오른쪽이 마비가 있어서 그런지 힘겨워하는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왼쪽 다리로만 돌리려니깐 동작이 더뎌져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게으름을 피워도 억지로 페달을 밟게 만드는 게 나의 역할이라서 옆에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


 동생은 여러 가지 재활 운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는 듯해 보인다. 오후 재활 중 쉬는 시간에 혹시나 싶어서 대변을 눴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는 걸 보면 이제는 대변감도 어느 정도 느끼는 것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질문을 하면 대변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몰라서 대답의 신빙성이 50% 정도였다면 지금은 거의 90%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만 봐도 장족의 발전이다.

  

기저귀를 교체하러 가서는 차마 못 볼 꼴도 봐버렸다. 기저귀를 갈고 있는 도중 실시간으로 배변활동을 하는 장면을 목격해 버렸다. 이제는 하다 하다 배출되는 과정까지 공유를 해준다. 이 상황에 기가 차서 동생에게 이런 것까지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하니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그래도 무사히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동생과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모르게 이상한 대화를 나누었다. 동생이 장난치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기분이 묘하다. 자꾸만 다른 차원에 있는 나와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거짓말을 친다. 아무래도 내가 반응을 해주니깐 더 그러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거울을 달라고 손을 뻗는데 동생이 가리킨 곳에는 거울이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라서 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 인상을 쓰며 거울이 있다고 말한다. 장난치지 말라고 하니깐 다시 한번 얼굴을 찌푸리며 거울을 달라고 한다. 도대체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거울이 어디에 있다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냐고 질문을 하니 미래가 보인다고 대답한다. 황당한 말을 하길래 집요한 질문을 했더니 결국은 미래가 보인다는 건 장난이라고 실토를 했지만 거울은 진짜 봤다고 한다.  


 끝까지 엉뚱한 소리를 하길래 그럴 거면 로또 번호나 알려달라고 했더니 황당하게 3의 배수로 대충 불러 준다.

“3, 6, 9, 12, 15, 36”


 정말 어디까지 믿어줘야 하는지 황당했지만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알게 된 거냐 물었더니 이번에는 웬 강 씨가 알려줬다고 한다. 동생이 장난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계속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로또 번호를 왜 알려줘?”


나의 질문에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비운하게 살지 말라고.”


 이 말을 듣는데 동생이 상상으로 만든 인물이든 뭐든 간에 그 순간만큼은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얘가 이런 단어를 말할 정도로 인지가 돌아온 건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있지만 우리의 처지를 비운하다고 여기는가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장난으로 가볍게 포장되었지만 무거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 게 정말로 무언가가 있으면 동생의 입을 빌려서라도 저 말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동생은 장난으로 그냥 한 소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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