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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Nov 0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9 - 스트레스 속 즐거움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요즘 동생 건강 호전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혹여나 좋은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 할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절대 동생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더 운동을 시키고 말을 건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그 무엇을 하더라도 내 성에 차지는 않는다.


  동생의 상태가 좋아질수록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도 늘어난다. 6월 28일 콧줄을 빼고 미음 식사를 시작으로 7월 11일에는 죽을 먹기 시작했다. 주변 어른들은 동생이 미음을 먹을 때는 죽으로 언제 바뀌냐며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재촉을 하더니 죽을 먹기 시작하니 이제는 밥은 언제 먹을 수 있냐며 묻기 시작한다. 퇴원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관심과 질문의 늪에 빠진 기분이다.


 궁금해서 물어볼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질문 하나가 나에게는 수십 번째 중 하나의 질문이다. 동생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자꾸만 훈수를 두는 것 같아서 지치기도 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건 했니, 전에 내가 말했던 물건은 샀니. 매일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다. 하물며 좋은 얘기도 매번 하면 질리는데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니 내 자신이 괜히 부족하게 느껴지다가도 그냥 자신만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진다.


 동생이 건강해지고 있어서 기분이 좋긴 하지만 나의 상태가 괜찮은 것 같지는 않다. 하루에도 감정이 수시로 요동치고 갑갑해진다. 그냥 그 어떤 말도 안 들리고 사람이 없는 공간으로 숨고 싶다. 지나친 관심은 잔소리로 들리고 스트레스를 준다. 제발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마음속으로만 간직해 두면 좋겠다. 병원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혼자 있을 만한 공간이 없어서 도망갈 곳도 없다. 때론 나만의 시간도 필요한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조금 지치긴 한다. 아니 솔직히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가득한 이 순간에도 즐거운 시간은 있다. 바로 동생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인지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도 쉽고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음식을 먹을 때이다.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뿌듯하다. 그런데 음식을 입으로 먹으면서부터 인지가 부쩍 좋아지면서 말도 늘었지만 행동도 그만큼 활발해지면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주스를 꺼냈다. 마시려고 뚜껑을 열고 있는데 동생이 빤히 쳐다본다. 그래서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입을 줬더니 생각보다 잘 마신다. 점도제를 타지 않아서 사례가 걸릴까 봐 걱정을 했는데 가뿐히 삼킨다. 그래도 혹여나 잘못되면 안 되니 조심스럽게 소량씩 먹이고 나서 동생을 상태를 살폈다. 더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일단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부터 걷고 와서 주겠다며 동생과 약속을 했다. 절대 혼자 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올라갔다 왔더니 황당한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다.


 분명 주스 뚜껑을 닫아놓고 갔는데 어째서 동생이 주스를 마시고 있는 것인가. 심지어 마시려고 입에 넣었다가 나를 보고는 놀랐는지 입에 있던 주스를 주르륵 뱉어 버린다. 아침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면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 놀란 아저씨가 오렌지 주스를 입 밖으로 흘리는 그 모습으로 말이다. 동생이 몰래 주스를 먹다가 걸려서 뱉어버리는 게 너무나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혼자 마시면 위험하다고 화를 내려고 하다가도 동생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일단 화가 나는 것보다 어떻게 주스 뚜껑을 열 수 있었는지 신기해서 다시 한번 시켜봤다. 동생은 오른손이 안 움직이여서 왼손으로만 주스병을 잡고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뚜껑을 열였다. 뚜껑을 헐겁게 잠가 놓은 내가 잘못이었다. 동생은 생각했던 것보다 손가락 힘이 좋았다. 방심했다.


 병실 아주머니들도 시끌벅적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흥미로운 듯 구경을 했다. 그러면서 동생은 아무 잘못 없다며 그 앞에 주스를 둔 누나 잘못이라며 동생 편을 들면서 장난을 쳤다. 그래서 나도 한술 더 떠서 몰래 마실 거면 먹기라도 하지 왜 아깝게 다 뱉어내냐고 했더니 동생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아주 환한 표정으로 웃는다. 어쨌든 새로운 능력을 발견했다. 이제는 절대로  동생의 손이 닿는 곳에 주스를 놔두지는 말아야겠다.


한바탕 주스 소동이 끝나고 동생과 대화를 시작했다. 여전히 동생의 말은 알쏭달쏭한 퀴즈 같다.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데 도무지 못 알아 들었더니 되려 왜 못 알아듣냐며 묻는다.


동생: “야시 끝”

나: “야시 끝이 뭔데?”

동생: “야시 끝이라고.”

나: “그게 뭐냐고??”

동생: “야가 끝.”

누나: “아아 ‘야’가 끝이라고?”

동생: “어. 누나야 말귀를. 왜. 못. 알. 아. 먹. 어?”


 동생이 한 글자씩 천천히 띄엄띄엄 말하는데 그걸 듣다 보면 어이가 없어진다. 발음은 어눌한 반면 문장 구사 능력은 정확하다 못해 날카롭다.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사람을 먹인다. 동생은 이렇게 말로 한방씩 날린다. 내가 어이없어하면서 떠졌더니 씩 하고 장난스럽게 웃더니 이렇게 말한다.


누나: “야, 야시 끝이라는 말이 어딨냐! 네가 말을 똑바로 안 하잖아.”

동생: “누. 나. 야. 남 탓을 하지 마라.”

누나: “너는 왜 다른 데서는 말이 없다가 나한테만 이러냐?”

동생: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분명 분한데 맞는 말이라서 따질 수가 없다. 동생이 아프기 전에는 서로 말싸움이 붙으면 절대 끝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열이 받거나 엄마가 그만하라고 소리를 치면서 누구 한 명의 입을 다물게 해야  끝이 났다. 우리 남매의 대화를 듣던 친구들은 장난으로 어떻게 말로 사람을 팰 수 있냐며 차라리 맞는 게 덜 아프겠다고 할 정도였다. 모두들 우리를 보고는 남매끼리 사이가 좋다며 예전에도 그랬냐고 묻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지지고 볶고 엄청나게 싸워댔다. 여기서 살짝 동생 험담을 하자면 상당히 싹퉁머리가 없었다. 남들한테는 잘했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다.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얄밉게 행동을 해서 많이 싸웠다. 그렇게 싸우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생겨버린 것 같다.


 한날 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생과 심하게 말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운전하다가 열이 받아서 내리라고 했더니 동생도 지지 않고 당장 차를 세우라고 소리쳐서 달리던 도로 근처에 있던 주유소에 그대로 떨궈 버린 적도 있다. 그때 엄마와 삼촌한테 무슨 일이길래 동생을 버리고 갔냐며 전화가 불이 나게 왔었다. 결국 동생은 택시를 탔는지 삼촌이 데리러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약속 장소에서도 아는 척을 안 하다가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화해하고 집으로 갈 때는 곱게 돌아갔다. 물론 이렇게까지 화를 돋우는 건 가족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는 타격이 없다.


 아마 동생은 지금껏 나를 감정적이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나 또한 동생을 그런 식으로 봤다. 서로 붙여놓으면 불같이 싸우는 존재 말이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굳이 싸울 일도 화가 날 일도 없다. 아픈 게 동생의 잘못도 아니고 짜증을 낼 만한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동생한테도 물어봤더니 본인도 인정했다.


누나: “나 생각했던 것보다 화를 잘 안 내지?”

동생: ”생각보다 온순해. “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게 인지가 돌아온 환자들이 우울증이 잘 걸린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예전과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몸이 아프다 보니 짜증을 많이 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동생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최대한 아무렇지 않고 가볍게 평소와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원래대로 장난을 치고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나까지 무겁고 진지하게 동생을 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동생에게 수시로 이야기했다. 몸 아픈 거 그럴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런 상황이 조금 빨리 왔을 뿐이라며 말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모습을 불쌍하다고 말을 한다면 그 말을 한 사람이 불쌍한 거지 절대 네가 불쌍한 게 아니라고도 말을 해주었다. 남들보다 조금 불편한 거지 그게 동정을 받을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지금 잠시 힘든 거지 무슨 문제가 되냐고도 말했다.


 아픈 사람에게 불쌍하다는 말은 불편한 말이다. 누군가를 불쌍하다고 하는 건 본인 기준에서 자기보다 나은 게 없을 때 나오는 말이라는 사실이 기저에 깔려 있다. 우리는 본인보다 잘난 사람한테는 불쌍하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이 아무리 부족해 보이더라도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거다. 멋대로 판단하고 동정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냥 남들과 똑같이 대하는 게 상처 주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동생이 의식이 없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저렇게 말을 했었다. 동생도 강인한 편이라 우울해하지 않고 밝아 보이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도 넌지시 질문을 하면서 떠봤다.


누나: “아무래도 아프면 자기 맘대로 몸이 안 움직이니깐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대. 그런데 너는 참 밝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우울한 적 없어?”

동생: “안 우울해.”

누나: “왜?”

동생: “나한테는 믿음이 있거든.”


 역시 내 동생이다. 쉽게 포기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다. 대화가 다 끝날 무렵 슬슬 잘 준비를 하면서 동생을 눕혔다. 항상 자기 전에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한 뒤 동생 입에서도 잘 자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은 잘 자라는 말을 듣고도 장난을 친다고 가만히 서 있었더니 동생이 나를 흘끔 보고선 말한다.


동생: “왜 쳐다보고 있냐고”

누나: “그냥.”

동생: “네 자리에 누워서 자라고.”

누나: “알겠어.. 이제 놓아줄게. 그런데 왜 목소리를 가늘 게 말해. 조금 크게 해 봐.”

동생: “말을 가늘 게 하는 게 편해.”

누나: “나 이제 진짜 내 자리로 갈게. 잘 자.”

동생: “잘 자.”


 동생 덕분에 병원 생황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다. 앞으로도 유쾌하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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