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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Sep 2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63 - 우당탕탕 여행 전날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오늘은 유독 날이 흐리고 빗줄기가 더욱 거세다. 내일이면 합천으로 여행을 가는 날인데 비가 많이 오지 않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 탈이 없이 무사히 놀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직감이다.


 점심쯤에는 장을 보러 간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예상컨대 물놀이를 하고 나서 피곤한 몸으로 술을 많이 마실 것 같지는 않아서 보드카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보통이면 소주와 맥주로 취할 때까지 달렸겠지만 이제는 슬슬 몸을 사려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싸게 많이 먹는 시절보다 비싸게 조금 먹는, 양보다는 질을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막 먹어도 소화가 되고 회복이 되었지만 20대 후반이 되니 슬슬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속출한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조금 비싸게 놀아보려고 한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단톡방에서 말이 없는 친구도 있다. 분명 몇 달 전부터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 참석여부를 물었고 9명 중 2명이 불가능하다고 했기에 7명이 가는 걸로 확정이 되었다. 그래서 숙소를 예약할 때 꽤나 애를 먹었었다. 글램핑 같은 경우는 최대 수용 인원이 6명이라서 여러 군데 문의를 넣었을 때 7명이 가능하다고 말한 곳이 딱 한 곳뿐이라서 숙소 컨디션을 따질 것도 없이 예약을 잡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친구 한 명이 갑자기 참석 불가라며 재밌게 놀다 오라고 한다. 뭐 이렇다 하는 설명도 사과도 없이 저렇게 톡이 왔길래 황당했다. 안 그래도 단톡방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는 중에도 말이 없고 어떻게 한다는 답장도 없어서 긴가민가했었는데 결국은 이 사달이 나버렸다. 평소에도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서 설마라는 생각으로 있었는데 역시나였다.


 숙소를 잡을 때 혹시나 싶어서 갈 수 있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물었을 때도 그에 대한 답이 따로 없어서 다시 묻지는 않았다. 인원이 많으면 이게 문제다. 어차피 나 하나가 빠져도 사람이 많으니 괜찮다는 생각에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1대 1로 만나는 상황이었다면 이 친구랑 손절을 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예 예상을 안 했던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지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따질 건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문자에 그걸 왜 여행 전날에 이야기하는 것이며 왜 숙소를 잡을 때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느라 이제 말했다며 그제야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줄 알고 신경을 못 썼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길래 당일치기면 숙소를 잡지 않았을 거라고 반문했다.  


 단톡방에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약속을 깬 친구에게 한 마디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내일 일정을 다시 조율한다. 평소에는 말이 많던 친구들은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다. 물론 갈등 상황을 마주하기 하기 싫어서 말을 안 하고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계를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총대를 멜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그 역할은 내가 맡았고 말도 못 하고 불만을 참다가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조금씩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여행 전날 갑작스럽게도 인원은 6명이 되었다. 한 명이 빠져도 인원이 많긴 하다.


 기분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가 되긴 했으나 그래도 이것 때문에 여행을 망칠 순 없다. 한순간의 감정에 좌지우지되어봤자 나만 손해다.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일인데 더신경 써봤자 기분만 상할 뿐 이득이 되는 게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즐기련다.


 그런데 오늘이 무슨 날인가. 저녁에는 또 다른 친구가 주차된 차를 누군가 긁고 도망가서 뺑소니 신고를 했다고 한다. 단톡을 보니 자동차를 새로 뽑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상당히 열이 받은 듯해 보였다. 그 기분이 뭔지 알기에 안타까우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불현듯 불안하고 찝찝한 느낌을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합천까지는 자가용 3대로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그중 한대가 이 친구의 차였기에 불편한 상황이 예측되었다. 어째서인지 시작부터 순조롭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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