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기억 사이

동기간

by 루씰

수영장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작은언니다. 얼마 전 무릎 한쪽에 인공관절을 넣고 아직 회복 중이다. 수다쟁이 언니.

“수영장 갔니?”

내가 다니는 시간을 알기에 묻는 말이다.

“응, 언니. 탈의실이야. 이제 들어가려고.”

“이따 나와서 로또 한 장 사라. 어젯밤 꿈에 오빠가 너하고 나한테 오천 원을 주더라. 꿈에 죽은 사람한테 돈 받으면 좋대.”

“작은오빠?”라고 되물으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려면 많이 주지, 오천 원짜리나 맞으려나?


수영하는데 자꾸 오빠가 생각났다.

재작년, 동네 목욕탕 사우나실에서 쓰러지신 오빠.

그날은 올케언니 생일을 맞아 여동생 셋이 오빠네 가기로 한 날이다. 깔끔쟁이 오빠는 여동생들 온다고 새벽같이 목욕재계하러 갔다.

동생들 만나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오빠는 평소에도 손톱 발톱 정갈하게 깎고, 옷 주름 반듯하게 펴 입던 사람이었다.

젊을 땐 틈만 나면 낚시를 갔다. 피라미를 잡아 오면 빨랫줄에 널어 바싹 말렸다가 구워 내 입에 넣어주곤 했다.

“막내야, 이거 먹어봐라.”

어릴 적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이었다.

나는 막내였다. 부모 형제에게 사랑을 원 없이 받고 자랐다. 그 사랑이 몸에 익어서, 지금도 문득문득 그리운 건지 모른다.

그날 아침, 큰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홍대역에서 만나 같이 가자고 하려나 했다.

“야, 오빠가 돌아가셨대!”

“뭐? 우리 오빠?”

사촌오빠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럼 우리 오빠지 누구 오빠야? 작은오빠 말이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작은오빠가 가신 재작년만 해도 일흔셋 큰언니는 멀쩡했다. 지금은 치매 초기, 뭐든 자꾸 잊고 묻고 또 묻는다. 그래도 아직 겉으로는 일상을 살아낸다. 같이 사는 딸이 힘들지. 큰언니가 나를 못 알아보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큰오빠는 오래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랑 스무 살 차이. 엄마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 낳고 나니 오빠들한테 창피하더라.”

온 식구가 한방에서 오글대며 자던 시절 얘기다.

스물부터 마흔까지 엄마는 여덟을 낳고 셋을 먼저 보냈다. 아들 셋을 잃고, 딸 셋을 품에 안았다.

그 옛날, 내가 초등학교에 처음 갔을 때 큰오빠는 나를 업고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데려다주곤 했다. 작고 여리고 가냘픈 막내가 너무 예쁘고 귀해서 큰오빠는 오랫동안 늙은 부모를 대신했다.

그날도 오빠는 검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등에 업힌 내 얼굴로 땀 냄새가 났지만,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집에서 한참을 걸어 학교 앞에 도착하면, 오빠는 나를 조심스레 내려주고 내 손을 잡았다.

“우리 막내, 오늘도 잘 다녀와.”

싱긋싱긋 웃기 잘하던 오빠의 그 말투, 그 손길. 그때는 몰랐다. 그 장면이 평생 내 마음 한가운데 남을 줄은.

죽은 지 오랜 사람은 꿈에서도 안 나타나나, 큰오빠 본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난다.

자꾸 눈물이 나 레인 몇 바퀴를 누운 자세로 헤엄쳤다. 누우면 눈을 감고 갈 수 있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더 난다.

물속에선 울어도 괜찮다. 물인지 눈물인지 아무도 모른다. 눈물이 물 온도와 차이가 나서 눈가가 뜨듯했다.


세월아, 멈추어다오! 지금 여기서, 제발.

낡으면 낡은 대로, 시들면 시든 대로, 늙고 주름져 추하면 추한 대로 딱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오빠 둘은 가셨지만, 큰언니가 나를 알아보는 지금, 작은언니가 여전히 사나흘돌이로 전화해 한 시간씩 수다를 떠는 지금, 이대로, 여기서 딱!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짧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낡고 삭은 몸뚱이로라도 더 오래, 더 천천히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오늘처럼 작은언니의 엉뚱한 전화를 받고, 큰언니의 “막내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언니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는 하루를, 하루라도 더 갖고 싶다.

그 하루가 또 하루를 이어주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한 계절 같이 건널 수 있겠지.

그렇게 이 사랑이 조금만 더 오래가기를, 끝나지 않기를.

끝났다 해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오래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