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남겨진 기억과 감정들

통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자리에서

by Intimate distance

나는 임상 현장에서 만성 통증 환자들을 많이 만나왔다.

나는 그분들께 통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묻고,

그 무렵 삶에 변화가 있었는지도 함께 묻곤 한다.

그들의 통증이 단순한 신체 이상이라기보다

삶의 무게와 두려움, 긴장과 피로가 오랜 시간 누적되어

몸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는 편이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그 과정에서 표정과 호흡의 변화가 드러나는 환자들은,

이 대화만으로도 몸이 어느 정도 이완되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반면, 삶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두리뭉실하거나

세월의 흐름, 노화, 호르몬 변화와 같은 이유로

통증을 설명하는 환자들도 있다.

이런 경우 감정에 대한 해석을

내가 앞서서 시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느껴지며,

몸의 퇴행적 변화나 기능적 부담이 되는 지점을 짚어

그 불편함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치료를 정한다.

디스크의 손상, 추간공 협착과 같은 의학적 용어들은

그들의 불편함에 대한 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통증을 보다 안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의 이야기 장치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삶의 아픔과 비극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도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아픔에 담긴 감정이

의식의 층위로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기에는 아직 너무 두렵고,

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통제할 수 없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공포를

안고 있는 상태일 가능성도 있다.


이들에게 몸은 비교적 대상화가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영역이며,

그래서 통증을 조절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환자들에게

기존에 경험해보지 않은 치료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되,

그 반응을 관찰했을 때

긍정적인 통제감이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치료를 지속하지는 않는다.

몸에 대한 통제권을 지속적으로 외부에 두려는 시도는

종종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고,

결국 환자 자신에게 더 큰 피로와 소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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