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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우스포 Apr 07. 2020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뭘까

 





코로나 19로 갇혀 살다 보니 작년 3월에 방송된 예능프로인 「스페인 하숙」가 생각난다. 

말로만 듣던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가까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완벽한 요리 솜씨로 지친 순례자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순례가 로망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방송을 보면서 실감했다. 

무엇보다 삶이 정화된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기 위해 찾는 것 같다. 

이런 프로를 기획한 PD는 한국 사회를  읽는 눈이 남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순례길 





「스페인 하숙」에 등장하는 순례길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산티아고는 아주 오래전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곳이다. 

야고보의 무덤이 세워진 뒤론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할 목적으로 800km를 걸어서 갔다. 

처음엔 성자 야고보를 찾아가는 신앙의 길이었지만 이제는 그 길을 걸으며 퍽퍽한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펴지는 경험을 한다.      


많은 이가 위대한 개츠비 인생을 꿈꾼다. 

소설로 읽었건 영화로 보았건 그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순례는 삶의 끝을 보게 하고 삶의 끝을 본 자는 겸손해진다. 

아마도 그 누구도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리라. 

백세 인생이라지만 백세를 사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 한 번의 인생을 살면서 안달하고 집착하고 분노하고 짜증을 낸다. 

그러다 문득 삶을 후회하게 되는데,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그때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순례는 이런 후회스러운 삶에 대한 리셋 버튼인 것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고 

비나 천둥이 없이 항상 맑은 날만 지속된다면 그곳은 사막이 되기에  

비옥한 땅이 되려면 비도 내려야 하고 바람도 불어야 한다는 걸 안다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인생은 무너지기 쉽다. 

요즘 인생이란, 가족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흉흉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어리다고 철이 없거나 나이가 들었다고 인생을 아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을 보면 어리다고 해서 인생을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란 것 느낀다. 

운명이 예고 없이 삶을 뒤흔들어 우리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꾸려 할 때, 철부지가 그 힘겨운 시간을 버텨낸다.      

한때 사람들이 '거룩'이란 말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거룩이란 내 마음과 시간을 절대자에게 주는 것이다. 

예능프로인 「스페인 하숙」을 보면 그 거룩이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음을 느낀다.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인 엘리아데는 성이 속에서 분리되는 순간 종교가 탄생한다고 말한다. 

종교가 많이 약해졌어도 많은 이가 여전히 신을 찾고 거룩을 추구한다. 

얼마 전 「콜라도 거룩할 수 있을까?」란 독특한 제목을 가진 학술 논문을 읽으며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거룩이란 개념에 이끌린다는 것을 느꼈다.       


중세시대엔 거룩함을 공간에서 찾았다. 

우리는 교회에 간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교회당에 가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예배처소에 가면서 그곳에서 신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예배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기에, 우리는 예배처소를 교회라고 부른다. 

헌데 신을 만나는 시간이 아니라 건물이란 공간 속에만 머물 때가 많기에 우린 신의 임재에 굶주려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그 거룩을 공간이 아니라 시간에서 찾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외국인 중 41퍼센트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너무 많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순례를 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것이 기쁘다. 

그만큼 자신을 찾고 싶고 힘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를 읽는 코드가 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 매운 음식을 먹거나 미니스커트를 입는다고 한다. 

문학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힘들 때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을 찾는다. 

잠시나마 힘겨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이든 예배란 신을 시간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시간은 피조물이다. 

시간은 인생의 목적을 일깨우는 알람이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한다. 

때문에 신의 임재가 느껴지는 강력한 예배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신이 원하시는 것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한다. 

『아홉살 인생』에서 작가는 묻는다. 


거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까? 


우리에겐 내 민낯을 보는 순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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