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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우스포 Mar 30. 2020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쪽에서 찾는 나만의 소확행 

펑펑 울고 싶은 날이 있다. 친구랑 몇 시간을 얘기해도 응어리진 것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살아남으려면 5년이든 10년이든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데, 다들 그런 날을 어떻게 견디며 사는지 싶다. 인간은 모순된 존재여서 악착같이 벌어서 알뜰하게 쓰기도 하지만 그걸 허황되게 쓸 때도 많다. 혼자서만 뒤쳐지는 것 같아 남들처럼 해보려고 발버둥 치지만 마음속엔 늘 애매한 기분이 잔상처럼 남아 있다. 


모든 게 애매할 때 내 상태를 가늠하는 방법이 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면 된다. 내가 선곡한 노래에서 무엇이 끌리는 가를 살피면 된다. 행복할 땐 멜로디가 먼저 들리고 힘들 땐 가사가 먼저 들린다. 힘들 때 기운차리라고 스스로에게 “힘내,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라고 위로해주지만 사실 별 도움은 안 된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다. 아이유(IU)에게도 그런 힘든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나요?”라고 질문을 건넸다. 

이에 아이유가 대답했다. 

“가끔 저요.”


아이유의 대답은 심리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문학적으로도 중요하다. 다들 힘들어도 악착 같이 싸우고 버티고 참아내는 걸 미덕으로 여기지만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물론 잘 버텨내면서 이겨내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아이유처럼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즉 잘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최은영의 단편(「아치디에서」)에도 아이유와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착한 아이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사람, 남을 먼저 배려하여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억압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남이나 장녀, 효자나 효녀에게 많이 나타나는 징후이다. 남에겐 좋은 사람으로 비치지만 실제론 힘겨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페르소나가 강하게 작동한 탓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페르소나의 덫이라고 부른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도 있고 삶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때도 있다. 믿었던 지인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사업이 실패하기도 한다. “하면 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라고 말하지만 삶에선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다. 일이 연거푸 엎어지거나 힘들게 써낸 입사 지원서가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미움만 남기 쉽다. 자기 마음을 자기 자신도 위로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작가 최은영은 알고 있다.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마음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한다고 열거나 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모르고 산다. 살다 보면 세상에 나 홀로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할 때, 그땐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잘 붙들어야 한다. 때론 지는 게 이기는 것이 되기도 한다. 힘들 땐 가끔 지더라도 괜찮다. 되는 일이 없어도 당신은 잘못된 존재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왜 그렇게 약해빠진 거야”라고 말해도 신경 쓰지 말라. 우리는 가족이라는 명목 아래, 아낀다는 명목 아래, 미래에 대해 사회생활에 대해 다 아는 듯 조언하고 충고한다. 하지만 나도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예상한 대로 내가 조언받은 대로 맞아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바랬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더라도 조금은 의기소침해도 자책하지는 말라. 


터키 작가 엘리프 샤팍의 강연을 듣다가 그녀가 터키어로 ‘모국’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걸 들었다. 터키어로 모국을 yurt라고 쓴다고 말한 뒤 그 뜻을  ‘고향’과  ‘이동식 텐트’라고 설명했다. 고향이 단지 한 곳에만 존재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결혼하면 고향이 두 개가 되듯이, 어디든 우리 마음속에 품고 다닐 수 있다면 그것이 고향일 것이다. 나도 힘겨운 시간을 버텨낼 때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 고향 같은 문장이 있었다. 


문학은 은행 잔고 같은 안정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내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다. 세상에는 성공이란 황금을 먼저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쪽에도 행복이란 황금이 있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신을 가꾸기 위해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이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인간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있다면 자기 자신을 가꾸는 법을 모르는 쐐기풀 같은 인간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적 심폐소생술 전문가란 생각이 든다. 삶이 혼란스러워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할 것이다. 여유가 되어 멀리 여행을 떠난다면 좋겠지만 다들 쉽지 않을 것이다. 삶에 조바심이 나면 시야가 좁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면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너무 잘 나가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돈도 없고 취직도 하기 싫은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에 크게 유행한 소확행이란 말을 하루키가 1994년 「랑겔한스 섬의 오후」라는 단편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걸 알고 이해가 되었다.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이르는 소확행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삶이 힘든 것은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옆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누구에게나 한계와 약점이 있어 우울한 날도 있는 법이다. 뭐든 잘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설령 그럴지라도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소란함과 조급함 속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선 안 된다. 첫 시작부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밍웨이나 피카소조차 실패를 겪었다. 당신은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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