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아이들의 고요한 숨소리만이 감도는 거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장의 어깨는 언제나 크고 작은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느끼곤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눈앞의 숙제처럼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쉼 없이 살아내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달려가는 이 길의 끝은 어디일지 아득해질 때가 있지요. 교회 문턱을 드나든 지 어느새 긴 세월이 흘렀지만, 때로는 그 익숙한 발걸음조차 해야 할 일을 마치는 듯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과 염려가 가시덤불처럼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었죠.
오늘 아침, 평소처럼 성경을 읽다가 마가복음 4장 18~19절 말씀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런 자들을 가리킨다. 즉, 그들은 말씀을 듣긴 하지만, 세상살이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욕심들이 그 마음에서 말씀을 막아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구절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 말씀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엉망으로 변해버린 제 마음의 밭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죠. '설마, 이 말씀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 하는 조용한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습니다.
어제저녁, 교회 남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 스크린 속 이야기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짙은 여운이 가시지 않는 극장 문을 나서면서, 저는 저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제 신앙의 현주소가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풍요로움이 감사와 은혜로 충만하기보다는 그저 '종교 활동' 정도에만 머물러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깊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Only Jesus'가 삶의 전부이고 이유일 텐데, 나는 어떠했을까' 하는 조용한 물음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묵상과 기도의 진정성에 대한 솔직한 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성경 묵상과 기도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말씀 몇 구절을 읽고, 형식적인 기도를 드리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 담긴 깊은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숙제를 해치우듯 의무감에 가까웠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다시금 마가복음 말씀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살이의 염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불안, 그리고 물질에 대한 부족함과 욕심이 제 마음속에서 자라나 신앙의 씨앗을 가시덤불처럼 칭칭 감고 있었던 것이죠.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걱정에 파묻혀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제 모습이 그 말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은 따끔했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묵직한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습니다.
이 영화가 준 감동과 말씀의 깨달음으로 인한 열정이 언제 시들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다시 익숙한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짐해 봅니다. 오늘부터라도 삶 속에서 진정성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매일 아침 마주하는 말씀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찾고, 진심을 담아 기도의 무릎을 꿇어보겠다고요. 당장 모든 것이 기적처럼 변하지는 않겠지만, 가시덤불 속에서도 굳건히 뿌리내려 기어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씨앗처럼, 저 또한 제 마음의 밭을 부지런히 가꾸고 물을 주며 성실하게 나아가리라 다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예측 불가능한 가시덤불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한 씨앗을 뿌리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염려, 자녀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욕심.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가시덤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가시덤불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굳건히 말씀을 붙잡으려 애쓰는 우리의 작은 노력과 진실된 마음이 아닐까요. 평범한 한 가장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다짐이, 언젠가 우리 삶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로 피어나기를 조용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