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이 혼라스러울 때가 있다. 설교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거나, 목사님의 어떤 말씀이 상처가 되었다거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목사님이 왠지 세속적으로 느껴질 때다.
어느 날 문득, 목사님의 행동이 “어, 저게 맞나?”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는 묘한 불편함이 자리를 잡는다. 설명하기도 모호하고,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어색한, 그러나 분명히 실재하는 그 감정 말이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조용히 혼자 삭이고, 또 누군가는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탓하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목사님을 판단하는 내가 잘못된 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그 불편함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성도가 교회 행사 영상을 정성껏 만들었는데, 목사님께서 시의원, 도의원 사진을 특정 위치에 넣어달라고 요청하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정 후에도 다시 “자신 뒤에 넣어달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더해져서.
그분의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영상이 문제가 아니에요. 교회에서까지 정치인들이 영광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거예요.”
작업의 피로함도 있지만, 그 밑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이 깔려 있다. 교회가 이래도 되는 건가. 목사님이 이런 분이었나.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맥락으로 세상을 읽는다. 성도들의 웃음과 화합을 담은 영상을 만든 사람에게, 그 영상은 공동체의 온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 안에 지역 정치인의 사진이 끼어드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신호가 온다. 이건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목사님의 눈에 그 영상은 조금 다른 것이었을 수 있다. 성도들의 화합을 담은 기록인 동시에, 지역 인사들이 함께한 행사의 공적 문서이기도 하다. 교회를 운영하는 위치에서 보면, 지역 사회와의 관계를 챙기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목사님은 아마 그 영상을 '예배의 기록'뿐 아니라 '대외 관계의 증거'로도 읽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같은 영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간극이 커질수록, 수정 요청은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된다.
두 번째 원인은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처음엔 과하게 들렸는데, 곱씹을수록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목사님에게 특별한 기대를 품는다. 그것은 의식적인 기대가 아닐 수도 있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그 공간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마음속에 새긴다. 거룩함, 순수함, 세속과 구별됨. 그리고 그 공간을 이끄는 목사님은 자연스럽게 그 상징의 대표자가 된다.
그러니 목사님이 정치인 사진을 넣으라고 할 때, 우리가 받는 충격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다. 저분도 결국 이 세상 사람이구나. 그 발견이 주는 낙차가 생각보다 깊다.
그런데, 어쩌면 그 발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그 불편한 감정과 씨름하고 난 뒤에, 조심스럽게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도 사람이다. 교회를 운영해야 하는 행정가이고, 지역 사회에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공인이며, 때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차선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다.
거룩한 지도자로서의 모습만 보아왔던 분이, 문득 세상의 무게를 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목사님을 위해 더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강해 보였던 분이 실은 나약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여겼던 분이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오히려 더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질문이 생각났다.
목사님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니면서도, 일상에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신앙인답지 못한 말을 뱉은 적도 있고, 가장 사랑해야 할 자녀들에게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날들도 셀 수 없이 많다. 목사님의 세속적인 행동에 마음이 불편했던 바로 그 사람이, 더하면 더했지 목사님보다 더 신앙인 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을 정죄하기에 앞서, 내 안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했다.
이 불편했던 경험이 뜻밖에도,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목사님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행동을 통해 내 안에 있던 교만과 이중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목사님의 세속적인 행동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이었다. 그 공간이 별것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토록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불편함은, 그 사람이 아직 신앙 공동체에 진심이라는 증거다.
다만 그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에너지를 잃는다. 그리고 자칫 목사님에 대한 판단이 신앙 전체에 대한 실망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것이 진짜 위험한 지점이다.
교회는 신성한 곳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 둘은 늘 긴장 관계에 있다. 완벽하게 거룩한 공간이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 것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 필연적으로 세상의 무게가 함께 들어온다.
그 무게를 목사님도 지고 있다. 때로는 그 고군분투가 성도들의 눈에 불편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그것이 목사님을 향한 기도의 이유가 되어야 하지, 정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도는, 어쩌면 목사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정성껏 만든 영상의 진심은, 이미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영상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