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수집의 기술

이야기 모으기

by 어니스트 정


“첫 원고는 0월 00일까지 제출해 주세요!”


모두가 처음 시도하는 책 쓰기였기에 전략이 필요했다. A4용지 100장 분량의 책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인원수로 나누어 한 사람당 필요한 원고를 정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원고를 요구하면 초보 작가들에겐 너무 큰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첫 단계는 1개의 원고만 제출하기로 했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주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점차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욕심이 생기길 바랐다. 글쓰기의 두려움을 넘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퇴근 시간, 메신저로 보낸 알림에 답장이 하나둘 올라왔다.

“아직 절반도 못 썼어요. ㅠㅠ”

“첫 문장부터 막혀서 3일째입니다.”

“정 팀장, 아이디어 줄 테니까 개요 좀 작성해 줘.”

첫 원고 마감을 일주일 앞두고 동료들은 힘들어했다. 막상 원고를 작성하려고 하니 A4 2장이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을 것이다.


한 동료가 찾아왔다.

“ 제가 쓴 내용이 글의 주제와 맞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은 어떤 내용을 쓰셨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동료들의 글쓰기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A4 2장 정도 1개의 원고 분량을 동료들의 경력이라면, 자기 생각과 경험을 충분히 글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던 게 나의 오산이었다.


늘 책을 가까이 해온 내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감일을 재촉하기 전에, 동료들의 고민을 먼저 들어봐야 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소재 선정의 어려움, 형식에 대한 고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눌 자리가 필요했다. 우선 원고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동료를 찾아갔다.


개인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쉬는 시간을 활용했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원고 쓰는 데 어려움은 없으세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통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말로 표현할 땐 술술 풀어내는데, 이것을 글로 옮기는 순간 막막해하는 것이었다.


“지금 말씀하신 그 경험이 참 인상적인데요. 그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적어보시면 어떨까요?”

“방금 이야기하신 것처럼 편하게 써보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요.”


말로 풀어낸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는 방법을 하나씩 제안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피드백을 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그날 저녁, 메신저 방이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방금 첫 문단 썼어요!”

“저도 한 페이지 완성했습니다.”


첫 원고 마감날. 예상과 달리 모두가 원고를 제출했다.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매일 마주하고 있지만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온 소소한 일상과 깊은 고민이 담겨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생각했다. ‘아,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되어가는구나.’ 혼자만의 작은 설렘과 기쁨을 간직한 채,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0월 둘째 주, 2차 원고를 준비하면서 나는 기획자로서의 부족함을 느꼈다. 1차 원고에서는 단순히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제에 녹여서 글로 써주세요’라는 요청만 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


먼저, 원고 작성을 위한 단계별 가이드를 준비했다:

- 1차 원고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 이어 쓰기

- 동료들의 글 읽고 공감되는 부분 찾아보기

- 일상의 글감, 아이디어 등 메모하기

- 이를 바탕으로 2차 원고 작성하기


패들렛을 활용해 동료들의 글을 한 곳에 모았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아이디어를 얻고, 위로받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4주라는 충분한 시간을 두어 일상에서 글감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도록 했다.

처음 맡아보는 기획자로서, 구체적인 가이드가 동료들의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랐다. 다행히 1차 원고 작성에서 힘들어하던 동료들이 한결 수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누그러진 듯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동료도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1차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부어서 이번에는 더 막막해요.” 처음 써보는 글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동료의 고민이 이해됐다. 책임감이 강했던 동료는 새로운 글감을 찾아 전공 서적부터 관련 연구 자료까지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업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했다.


책 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전문성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다시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우리의 업무 역량도 자연스럽게 강화했다.


“팀장님, 저번에 제가 쓴 글 보완해서 다시 써봤어요. 한번 봐주실래요?”


퇴근길에 받은 수정본에는 놀랍게도 1차 원고에서 보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과 생생한 디테일이 담겨있었다. 글쓰기가 무서웠던 우리는 어느새 책 쓰기의 매력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면서 겪었던 희망과 좌절의 순간들을 들려드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