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걸까.
나는 내가 29살쯤에는 대기업에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면서 칼퇴하고 집에 돌아와 운동도 매일 하며 저녁이 되면 사랑하는 애인과 시간을 보내는 미래를 꿈꿨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평일에 3~4명의 신입 개발자와 인턴, 프리랜서의 업무 일정도 관리하며 웹 개발자로 일한다. 중간 관리자와 실무자를 병행하는 나는 한 달의 절반 이상은 야근을 하고 요즘은 9~10시에 출근해서 9~10시에 퇴근한다. 회사는 중견이고 월급은 혼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지만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한다. 애인은 없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하루 1~2시간 침대에 누워 핸드폰 하다 잠이 든다.
올해 나는 새로운 병을 진단받았다. 하나는 ahdh.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요즘, 그렇다고 맘 편히 핸드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때에는 오늘 하루를 허비했다는 생각으로 우울하게 잠드는 요즘에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고치고자 동네 정신의원을 찾아갔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은 뜻밖에도 adhd로 의심된다고 하셨다. 뇌파검사, Cat 검사 ( 단순주의력, 선택주의력, 지속주의력, 분할주의력, 작업기억력 등 5가지 종류의 주의력을 컴퓨터로 검사하는 것) 등 여러 검사 결과 선생님은 나한테 고지능 ahdh, 주의력 결핍 adhd라고 말하셨다. 요즘은 조용한 adhd 로도 많이 불리는 병이라고 한다.
콘서타와 메디키넷을 교차해서 처방받아먹고 있지만, 집중력이 확 좋아지지는 않았다. 차분해질 때도 있지만 체감하는 시간은 짧았고 2주 정도 적응 기간이 끝나자 여전히 딴생각도 많아지고 충동적으로 핸드폰을 할 때도 많았다. 약을 먹으면 드라마틱하게 바뀔 줄 알았는데, 현실은 식욕이 없어져서 살이 좀 빠진 게 좋다는 거 말고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제 약을 먹은 지 3주 정도 되었고,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건 3주 정도 약을 먹은 후 내린 결론이다. 3주 동안은 간절히 바랐다. 내가 달라질 수 있기를, 덜 우울하고, 좀 더 활발해지고, 좀 더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했다. 요즘 날 불안하고 슬프게 하는 건, 나름 열심히 달려온 삶 같은데 왜 나는 지금 안정적이지도 못하고, 업무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그렇게 힘들게 지켜온 이 일들이 내 커리어에 장기적으로 도움 될 거라는 확신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거다.
언젠가 될 거라고 믿었던 기대가 하나 둘 무너지면서,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분명 더 나아지고,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달려온 거 같은데, 지금은 명확한 목표도 없고 아침에 세운 계획을 거의 지키지 못한 채 업무에 파묻혀 살며, 저녁에 일기도 쓰지 못하고 계획 점검도 하지 않은 채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잠드는 걸까.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던 내 하루하루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마음이라 슬프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걸까. 내가 이제껏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건지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얀색 도화지가 된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답지를 보는 기분이다. 스스로에게 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조용한 침묵은 서늘하고 자조적인 감각으로 눈에서 흐른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래도 정신과 약을 사 먹을 수 있는 직장 다니는 기간 동안 내가 나로 실험을 몇 개 해보고자 한다. 내가 이 힘듦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조만간 퇴사하면 비싼 정신과 약을 사 먹는 것도 어려워질지 모르니까.
이 실험 일지는 내가 나로 하는 실험이다. 내가 좀 더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조금이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기록해서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살아보고자 한다.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