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리상담기
나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심미적 기준이 높으며, 꼼꼼하고, 최대한 모든 경우에 수에 대비하려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항상 동반하여 나를 괴롭히는 요소들이 있다. 앞서 나가는 걱정, 높은 불안도,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훨씬 더 순발력 있게 발견해내는 날카로운 사고.
난 '무던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러한 나의 특성을 '단점'이라고 인지하지 못했고, 나이가 들면서 그것들을 단점이라고 단정지으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그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현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나의 단점들을 있는 그대로 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항상 이런 고민들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주 큰 오만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끝난 연애를 통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의 아주 피상적인 부분만 잘 알고 있었다는 걸. 그 연애가 끝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계속 마음 속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인다. 자책과 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으로 점철된 생각들은 매분매초 나를 짓눌렀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에 대해서 잘 몰라서, 너무 많이 서툴러서,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오기가 힘들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8월 말, 마음이 계속 힘들어서 브런치에서 '이별 후 자책'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눈에 닿는 거의 모든 글을 읽었다. 스크롤을 꽤 많이 내리고 페이지수가 3, 4까지 넘어갔을 즈음에 나는 우연히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즈음에 하고 있었던 생각과 깨달은 것들을 모두 담고 있는, 바다와 같은 글이었다. 그 브런치에 올라온 모든 글은 내 시간을 단숨에 앗아갔다. 그리고 그 작가님이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도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잔뜩 생채기가 난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어찌할 줄 몰라서였다.나의 힘든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두 번 정도 상담을 찾았다. 하지만 꾸준히 받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과, 당시 상담 선생님들과 결이 맞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어 겨우 2회기씩 상담을 받고 그만두었다. 당시에는 상담을 그만두고 나서도 다시 괜찮아지는 나의 모습에 '상담을 받을 필요까진 없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다르다는 걸 나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녹음이 짙은 숲의 농도로 그 사람을 사랑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여태까지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무수히 많이 건넸지만 내가 여태까지 알고, 하고 있던 사랑은 매우 얄팍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나의 관성으로 그 사람에게 사랑을 건넸지만, 그 사람은 그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표현하기 정말 어렵지만, 난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내 진심어린 사랑은 그 수심이 매우 얕았다는 것을, 난 이번 연애를 통해 깨달았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깨닫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이 사랑의 후유증이 꽤 오래 갈 것이라는 것도 난 알고 있다.
브런치에서 우연히 상담사님의 글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고, 나는 다시 한 번 내 인생에서 세 번째 상담을 고민하게 되었다. 다른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반드시 그 상담사님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나의 발목을 잡은 건 금전적인 부분이었다. 상담이라는게 최소 10회기는 받아야 유의미한데, 10회기의 금액이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예약을 했다가 취소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그 상담소가 계속 마음속에 밟혀 결국 나는 양해를 구하고 다시 예약을 했다. 그렇게 나는 인생 세 번째 상담의 첫 단추를 꿰었다.
9월 초, 나는 신사동에 있는 작은 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첫 번째 상담에서 나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어야 '효율적'으로 상담이 진행될 것이라는,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익숙한 조급함이 내 이야기의 방향을 잃게 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은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시며 나의 불안에 부드러운 손길을 건넸다. 차분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작고 아늑한 상담소의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상담이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겠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세 번의 상담을 마친 상태이다. 상담을 받으면 받을수록 '스무번을 받아도 모자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나를 알아가고 나를 받아들이는 여정은 매우 길고, 내가 살면서 내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 인정하기 싫어 항상 책과 영상으로 '멘탈 강해지는 법', '흔들리지 않는 법'을 섭렵하며 A부터 Z까지 모든 이론을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은 머릿속에 있는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매뉴얼은 나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그런걸 접할수록 나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아 왜 난 이렇게 안되는거지.'
지금도 나는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그 힘듦을 그 누구에게도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난 상담을 받는다.
선생님이 우리 상담의 목표를 적어보자고 했을 때, 선뜻 적을 수가 없었다. 책에서 본 이론적인 말만 떠올랐다. 첫 번째 상담에서 난 상담 목표를 이렇게 적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내가 적은걸 본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역시 책을 정말 많이 읽으셨군요!“
세 번째 상담에 간 날, 나는 이전보다 마음이 더 유약해진 상태로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울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상담 말미에 이 목표를 다시 적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난 적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이 마음의 파도를 진정시키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 목표를 수정하지 못한 채 상담을 마쳤다.
30년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마음의 파동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날들이다.
흔들리지 않아야 해, 흔들리면 안 돼,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힘들어 한다고?
내가 나에게 했던 말들은 온통 힘들어하는 나를 다그치는 말 뿐이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힘듦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나의 이런 찌질한 모습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사실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결국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인정하는데 매우 서툰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가장 몰아세웠다. 그런 나에게 이제 그만 혼내라고, 이제는 좀 감싸 안아 달라고 내 안의 내면아이가 나에게 울면서 말하고 있는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앞으로 꽤 긴 기간동안 브런치에서 연을 맺은 선생님과 상담을 이어나갈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나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 이번주에 상담에 가면 상담 목표를 이렇게 수정해야겠다.
"나 스스로를 가장 잘 위로 할 수 있는 사람 되기"
인생에서의 모든 고통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서 찾아온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거겠지? 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질 때 즈음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수록 그 사람에게 참 많이 고맙다.
앞으로 나의 상담기를 꼬박꼬박 기록하며 나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해봐야겠다.
그리고 항상 괜찮다고 말해줘야겠다. 아직까지, 많이, 흔들려도 괜찮다고.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다고.
2023년, 가을에 막 접어드는 9월 중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