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미끼일지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던 걸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가설 하나가 생기고 있다. 이 글쓰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책 한 권쯤 남기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을 적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사람 정도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 정도가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일본의 라쿠고(落語)를 소재로 한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게 되었었다. 오래 공부한 일본어이고, 라쿠고는 그 궁극 같았다. 저걸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하는 향상심이 순간 샘솟았다. 그래서 라쿠고 영상까지 찾아본 일이 있다. 그때 아마도 나는 몰라도 그들 세계에서는 유명하리라 짐작되는 라쿠고가가 이야기의 도입을 길게 이어갔었는데, 입담이 너무 좋아서 귀가 참 즐거웠었다. 그런데 그 세계의 스승일 것이며 대가인 그는, 라쿠고 한편을 외워보려 했던 때의 소감을 전하면서, 라쿠고는 들을 때가 제일 좋지 하려고 하면 무서운 일이 된다는 말을 했었다. 그 무서움이 어떤 것일까 일순 궁금했었다.
생각해 보면, 심리학도로서 심리학자에 대한 동경으로 오래 살아온 나에게 그 두려움은 살 떨릴 정도로 익숙한 것이다. 심리학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고 싶었던 나. 사회과학 대학 건물에 처음 앉았을 때, 꿈을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설레고 행복했던 마음. 그러나 자원이 적은 내가 이 학문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한없이 소모해야 했다. 논문 한편은 신체 장기 하나와 맞바꿔 나온다는 도시전설 같은 말들도 있었다. 변수 많은 인생이니 단순히 그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도 환자에 환자로 거듭났으니 한 마디 보탤 자격은 있겠지.
글쓰기의 세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더 어려운 때에 더 희박한 에너지로 물정 모르고 동경심을 품었던 건가 싶어진다. 레드오션이 아닌 곳이 없다. 나는 나를 위해 쓰고 싶기도 하고, 읽힐 일 없는 폐지를 남기고 싶지 않기도 하다. 상반되는 두 욕구는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자석의 척력처럼 협력하여 뜻을 이루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더 이상 무진장 노력하던 삶을 살고 싶지도 않고, 그럴 힘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줌처럼 남아있는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마침 글쓰기가 되었던 것인데. 말을 줄이게 되는 심정. 아무튼 그저 그런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답 없는 고민에 빠지다가 다시 책을 읽고, 바보처럼 다 잊은 듯이 다시 쓴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처럼.
*커버 이미지 : 애니 「TRIGUN STARGAZE」 엔딩 속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