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과거의 기자'를 말한다면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
기자 사회에는 여러 가지 관행이 있었다.
스스로 자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야마가 선 기사'를 위해 기사 작성 과정에서 그 야마에서 벗어나는 팩트들을 쳐내는 행위를 들 수 있겠다.
종이신문과 지상파 방송과 같은 올드미디어의 시대에는 시간(방송)과 면(신문)의 제약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잔가지'라고 여겨지는 내용들을 잘 쳐내는 능력이 유능한 기자의 한 덕목으로 평가됐던 것도 사실이다. 기자들이 이쪽저쪽에서 취재한 내용은 일관되지 않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물론 양식과 양심을 가진 기자들의 결과물은 이런 '가지치기' 과정을 거치더라도 대개 사실, 진실과 거리가 크게 멀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기사들이 큰 역할을 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사실, 진실과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과거 이렇게 실수가 생겼을 때 피해를 본 입장에서 이를 바로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는 과정은 일반에 노출되기 어려웠다. 기자 집단, 언론사는 한마디로 힘이 센 집단이었다.
이 힘의 근본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힘이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주요 정보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 두 번째는 미디어의 독점적 소유다.
첫 번째 검찰, 서울 시경, 국회, 청와대 등 각종 출입처들은 이른바 '기자단'이라는 카르텔이 존재했다. 이 카르텔은 권력자와 기자 집단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것으로 정보는 가장 우선적으로 이 폐쇄적 집단 안에서 공유됐다. 이 카르텔은 비밀도 공유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카르텔에 속한 권력자·기자·언론사 사이에 어떤 동업자 의식, 신뢰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두 번째 과거 뉴스는 종이신문이나 방송뉴스로만 전달되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기업체 관계자들이 다음날 신문 가판을 먼저 보려고 광화문 일대에서 대기하다 노상에서 신문을 체크하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졌다. 주요 이슈가 있는 경우 정부 관계자들은 9시에 시작하는 지상파 방송 뉴스를 모니터 하기 위해 TV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기업과 관공서의 홍보실에는 VCR 녹화기가 여러 대 배치되어 있었다. TV 뉴스를 다시 볼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카르텔은 무너졌다. 오히려 카르텔 밖에서 정보가 활발하게 오간다.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으로 과거에 독자·시청자라고 불렸던 수동적인 대상은 이제 없다. 수많은 뉴스 콘텐츠 가운데 하나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되었고, 사용자인 동시에 전파자이며 생산자 이기도 하다. 콘텐츠가 오가는 통로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활용할 수 있다. 필부의 트윗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이나 기자의 트윗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다시 이 글의 출발점인 '관행'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들은 알아야 한다.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생각했던 것, 혹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재의 '능동적인 사용자인 동시에 적극적 생산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무의식적으로 혹은 관행이라고 여겼던 것이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