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링크 세(link tax)' 논란 분석
괴물 구글과 아주 쩨쩨한? 인터넷 광고
미국 현지시간 2019년 10월 23일 네이처에 양자컴퓨터 기술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에서 구글은 자신들이 '54 큐비트 시커모어 프로세서'를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기존 슈퍼 컴퓨터가 1만 년 걸쳐 수행했던 계산을 200초 안에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날에 빗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 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논문을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뭔가 대단한 것이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인간 이세돌과 대국을 펼친 알파고의 시작도 그리 거창해 보이지 않았다.
구글은 괴상한 일을 참 많이 한다. 구글이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비서는 사람 대신 미장원에 전화를 걸어서 자기가 사람인 것처럼 능숙하게 예약을 잡는다. ( https://youtu.be/D5VN56jQMWM ) 사람처럼 걷고 뛰고 공중제비를 도는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 https://youtu.be/_sBBaNYex3E ) 자율주행 자동차 가운데 가장 많은 경험을 쌓은 것도 구글이다. ( https://youtu.be/ROAwXEqDk7k ) 지금 나열한 프로젝트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들이고 구글은 사실 많은 비밀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다.
구글은 무슨 돈으로 당장 돈이 안 벌리는 이런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차를 파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을 만들어 파는 것도 아니고 구글의 주 수입원은 '쩨쩨하게도' 모바일 인터넷 광고다. 2018년 구글의 매출은 391억 2200만 달러(한화 약 44조 239억 원)였는데, 이 가운데 광고 수익은 전년 동기보다 19% 상승한 326억 3500만 달러(한화 약 36조 7241억 원)였다. 83%나 된다.
이렇게 구글이 광고에서 돈을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구글의 가장 큰 경쟁력, 강력한 검색 덕분이다. ( 우리나라 현실과는 좀 다른데 구글 자리에 네이버나 다음을 넣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네이버나 다음은 검색 기술이 구글과 비교할 때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동안 '지식인', '실시간 검색어' 등의 잔기술과 인링크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구글이 모바일 인터넷을 장악하고 광고를 빨아들이자 많은 것들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신문사였다. 신문산업은 기업들로부터 광고를 받아 콘텐츠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업종인데, 구글이 광고를 독식하자 생존의 기반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왜 '링크'를 올리는 것에 돈을 내라는 거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링크세(link tax)는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이 '저작권'이라는 무기를 살짝 변형한 뒤 구글을 향해 일격을 날린 것인데, 이 공격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2019년 3월 26일 “유럽연합 디지털싱글마켓 저작권지침(EU Directive on Copyright in the Digital Single Market)”에 관한 최종 표결을 진행해 찬성표 348 대 반대표 274(기권표 36)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각 회원국은 위 지침을 발효일로부터 2년 내에 국내법에 반영해야 한다. 이 저작권 지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링크세(link tax)'다.
'링크세'는 초안에서는 11조에 나와있던 것인데, 확정된 저작권 지침에는 15조(Article 15,
Protection of press publications concerning online uses)로 바뀌었다. 이 저작권 지침의 표현은 초안보다는 완화되었지만 시장이 받아들이는 핵심 내용은 다르지 않다. 즉 구글 같은 거대 사업자들이 언론사들의 콘텐츠를 검색에 노출시키려면 그 저작권을 인정해 링크에 대한 세금, 'link tax'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침은 논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란을 낳았다. 언뜻 생각하기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에 어떤 콘텐츠의 링크를 게시하는 건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 널리 받아들여지던 판례다. 그런데 왜 구글이 링크를 노출시키는데 저작자에게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인가?
아래는 구글 검색에서 '조국'이라는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타나는 검색 결과이다.
구글은 검색 결과로 단순히 '링크'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링크가 걸려있는 제목은 물론 기사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미지 및 스니펫)을 긁어와서 함께 보여준다. 즉 구글의 검색 결과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 링크 이상이다. 달리 말하면 구글이 언론사의 콘텐츠를 긁어와서 새롭게 편집한 일종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저작자들의 '저작권이 침해된다.'라고 문제 삼을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편집한 콘텐츠'의 우수성 때문에 구글은 광고로 돈을 번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꿔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만약,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사가 없다면 구글은 위에서 보는 것 같은 '편집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PC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 초기에는 광활한 인터넷의 공간에서 구글이 사용자들에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구글과 언론사가 공생의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구글이 모바일 광고 시장을 통째로 먹어버리는 상황에서 콘텐츠 생산자들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저작권 지침'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EU의 지침이 구글에게 '일격'을 날린 셈이 된 것일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구글은 이미 한 국가, 어쩌면 국가들의 연합(EU) 보다도 힘이 센 존재가 되어있다.
첫 번째 전장 프랑스
저작권 지침에 따라 프랑스는 10월 24일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링크세’를 골자로 하는 저작권지침이 적용되는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10월 24일 이후 구글은 검색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선 언론사들에게 일정액의 ‘링크세’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구글은 그동안 '링크세를 낼 생각은 없다'라고 맞서 왔다.
구글은 대신 '섬네일과 짧은 설명(snippet)을 빼고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응수했다. 단순 링크는 저작권 라이선스 협상 대상이 아니고, 제목만 포함할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저작권 지침에 담긴 예외 조항을 파고든 것이다. 대신 “명시적인 동의(opt-in)를 표시한 언론사의 기사에 한해 섬네일 사진이나 본문 요약을 표출하겠다”라고 밝혔다. 아마도 구글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프랑스의 뉴스 생산자들은 견뎌낼 수 있을까?
10월 17일 프랑스 대통령과 법무장관까지 나서 구글에 조치를 취하겠다며 으름짱을 놓고 있지만 그리 호락호락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구글은 EU가 저작권지침을 도입한 직후 스페인에서 비교 시험(A/B 테스트)을 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방식대로 서비스했을 때와 본문 요약(snippet), 사진을 제거하고 서비스했을 때의 트래픽을 분석한 것이다. 구글은 공식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그 결과 사진과 스니펫을 제거했을 때 "트래픽이 45%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의 알고리즘 변경에 따라 콘텐츠 생산자들의 희비가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우리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신문사와 방송사 등 국내 언론사들도 네이버, 다음 등 포털과 한때 힘겨루기를 했었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2013년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구글이 '사이트 폐쇄'(dropping sites)로 대응하자 언론사들의 트래픽이 크게 줄어들었고 결국 거대 언론사들이 무릎을 꿇었었다.
결국 관건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인 프랑스 정부가 얼마나 '저작권 지침'을 잘 이행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이런 '저작권 지침'에 찬성한 프랑스의 언론사들이 얼마나, 어떻게 버텨낼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지금은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니라 EU 차원의 지침이라는 점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구글이 표명한 입장을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명시적인 동의(opt-in)를 표시한 언론사의 기사에 한해 섬네일 사진이나 본문 요약을 표출하겠다”이다. '고개를 숙인 자, 환영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트래픽 급감을 맛보게 하겠다.'는 협박이다.
그래서 우리는?
콘텐츠 생산자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이 공존은 끝났다는 본격적인 신호음이다. 위에서 2013년 상황이 잠깐 언급되지만 사실 '평화로운 공존'의 시기는 진작 끝났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이런 갈등 양상이 콘텐츠 생산자와 플랫폼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vs 국가, 플랫폼 vs 국가연합의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여러 번에 걸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토종 포털의 존재 때문에 유럽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콘텐츠 생산자 vs 플랫폼 사업자'의 기본 구도는 동일하고 그래서 EU와 구글 사이에 벌어지는 문제는 물 건너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른바 '포털 메인'에 걸리는 기사의 편집권을 두고 포털과 언론사, 그리고 정치권 사이에 여러 번 갈등이 노출된 바 있다.
마침 카카오는 25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연예뉴스 관련 댓글, 실검 문제를 거론했다. 그런데 일문일답을 보면 초점은 단순히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건에서 비롯된 '소규모 개선'에 맞춰져있지 않다. 뉴스 서비스에 대한 대대적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올해 모바일 1면 정책에 큰 변화를 줬던 네이버도 내년에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내년은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 총선이 치러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변화의 방향을 분명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방향이 어디로 가든지 한 가지 '부수효과'는 분명하게 예측된다. 그동안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트래픽을 의존해왔던 언론사들, 특히 키워드나 실검 어뷰징으로 근근이 돈을 벌어왔던 군소 매체들의 수익이 아마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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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문서|
1. 유럽연합 디지털싱글마켓 저작권지침 및 초안과 수정안 대조표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HTML/?uri=CELEX:32019L0790&from=EN
2. 법무법인 세종, 「유럽연합 디지털싱글마켓 저작권지침(EU Directive on
Copyright in the Digital Single Market)」의 소개와 전망
3. 구글 공식 블로그 관련 글 목록
4. 프랑스 정부의 대응을 다룬 기사
https://www.latimes.com/business/story/2019-10-17/france-accuses-google-ignoring-copyright-law
5.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Directive_on_Copyright_in_the_Digital_Single_Mark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