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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May 17. 2023

이과 재수생의 문예창작학과 입성기

기억 속 이야기 1

대입 재수 시절, 대부분의 재수생들이 그렇듯 연초에 품은 비장한 각오는 서서히 무뎌지고 성적은 점점 떨어져 갔다. 당시 중간만 해도 ‘SKY’에 간다는 종로학원에 다녔는데 반에서 중간을 간 적도 없었던 나는 서서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과여서 국어2를 공부할 필요가 없었지만 여러 종의 국어2 교과서들에 일부만 실린 단편 소설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그 소설을 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서 읽게 되었다. 김동인, 김유정, 염상섭, 채만식, KAPF작가들을 지나 김동리, 황순원, 최인훈, 이청준에 이르기까지, 학원에서 맨 뒷줄에 앉아 소설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결정적으로 그 해 발간된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책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에 소개된 70~80년대 주옥같은 소설들을 접하면서 소설 읽는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고, 기어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소설을 쓰려면 어디서 뭘 공부해야 하지? 그때 내 뇌리를 스친 건 모의고사 성적표 뒷면의 대학배치표에서 보았던 문예창작학과였다. 지금은 문예창작학과가 여러 대학에 있지만 당시 4년제 대학 문예창작학과는 전국에 단 두 곳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지방 분교(당시 공식 명칭은 제2캠퍼스였지만 나는 지방 분교라는 말에 더 정이 갔다)의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다. 학창 시절과 재수시절을 거치면서 약간 삐뚤어져 있었던 나는 하루빨리 집에서 떨어져 나오고 싶었다. 입학하고 나서 보니 서울에서 통학을 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지만 지원할 때 나는 당연히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허락도 예상외로 쉽게 떨어졌다. 이미 모의고사 성적표에 적힌 등수로 나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내려놓으신 상태였고 내가 초등학교 때 글짓기 상을 곧잘 받아왔다는 것을 용케 기억해 내셨는지, 네가 잘하는 걸 해보라면서 격려까지 해주셨다. 말씀은 그렇게 해도 아버지는 내가 법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던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 이과를 택한 것도 아쉬운데, 당시 인기 있던 컴퓨터공학과 정도 들어가서 밥벌이는 충분히 하려니 했던 내가 터무니없이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하니 내심 섭섭하신 눈치였다. 옆에서 어머니가 정 그러면 서울에 국문과도 많은데 굳이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야 하냐고 한마디 하셨다(역시 이 세상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어쨌든 나는 중앙대학교 제2캠퍼스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고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 내가 지원하기 몇 년 전까지 실기시험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때는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선발했다. 만약 실기시험이 있었다면 문과 시험과목을 원서 내고 나서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던 내가 상위권으로 합격하기란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입학해서 보니 동기들 중 많은 친구들이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이나 방송반 활동을 했고 개중에는 이미 신춘문예 투고를 해본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만 가진 초짜 문학청년이었다.


그렇게 나는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지방 분교에서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배꽃과 알싸한 밤꽃 향기에 취하고, 겨울이면 매섭게 부는 바람과 분지의 추위를 견디면서 방학 때도 거의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4년을 그 지방 사람인 것처럼 살았다. 간혹 재학 중에 등단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선후배들과 어울려 밤새워 술 마시고 인생을 논하느라 글은 쓰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글은 따로 뭘 배워서 쓰는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4년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한 시간이었다. 그 시절 기억들이 내 머릿속의 반은 차지하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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