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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Sep 19. 2023

살아 움직이는 악당이 필요해!

가족합작 독서노트 6

엄마가 책을 빌려오고, 첫째가 글을 쓰고, 둘째가 그림을 그리고,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합니다.”


책제목 소원을 들어 드립니다, 달떡 연구소

지은이 이현아

출판사 도서출판 보리


줄거리

토린은 옥토끼 도시 달떡 연구소 연구팀에서 일하고 있는 옥토끼이다. 그러던 중 토린은 갑자기 소원팀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리를 만난다. 그리고 첫 임무에서 나래를 만나 나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놀이공원으로 간다. 그런데 놀이공원 소원나무 아래에서는 이상한 달떡을 만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토린은 친구인 포달을 만나고 포달이 연구소를 배신했다는 걸 알게 된다. 포달이 붙은 쪽은 옥토끼 도시의 시장이었다. 시장은 과거 인간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에 토린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토린은 아리와 나래를 구하고 도망친다. 그 후 토린과 아리는 계속 나래네 집에서 지내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 달로 돌아간다.


감상문

이야기에서 주인공 토린의 친구인 포달은 연구소를 배신하고 시장과 함께 지구를 정복하는 편에 선다. 그런데 포달은 자신이 연구소를 배신하기 전에 토린이 먼저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한다. 포달과 토린은 오래된 친구이다. 하지만 토린이 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둘 사이가 좀 서먹해졌는데, 토린이 포달이 하는 일은 쉽고 보잘것없으며, 자신이 하는 일은 어렵고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토린은 자신이 포달보다 중요한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빴다고 말하지만 과연 포달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새로운 달떡을 개발하느라 고민하는 연구팀 일도 힘들지만, 온종일 새로운 달떡을 만들어내야 하는 생산팀 일도 힘들다는 걸 토린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남이 하는 일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더 이입이 되고, 자신이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토린의 잘못은 자신의 생각을 당사자에게 직접 말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싶은 오랜 친구에게 자주, 반복적으로 말했다.


나는 토린이 많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포달이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선택을 한 건 맞지만, 나였어도 토린 같은 친구와는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에게 하는 말은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친구는 삶에서 얻는 보물이고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포달이 붙은 쪽은 시장이고 이야기 속 사건의 배후도 시장이다. 하지만 시장에게도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다. 믿었던 인간에게 배신당하고 아내를 잃은 사연이. 그런데 다시 만난 나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생각대로 인간에게 배신당했던 게 아니었다. 아마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시장은 한동안 충격을 받고 자괴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시장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된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잠겨 배신자의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겠지. 하지만 들었어야 했다. 자신이 멋대로 내린 판단으로 일을 크게 벌여서는 안 됐다. 언제나 중요한 건 진실이다. 감정도 중요하지만 감정으로 일을 그르친다면 그건 멍청한 것이다.


성격유형검사 질문 중에 ‘사람들이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했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었다. 별로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감정도 충분히 이성만큼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답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유는 바뀌었다. 개인은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해야 더 나은 삶을 살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고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이야기

아빠는 요즘 동화를 많이 안 읽어봐서 그런지, 이번 책의 구성이 복잡하고 이야기 전개가 스펙터클해서 깜짝 놀랐어. 여러 등장인물들 중에서 아빠도 포달에 눈길이 갔어. 포달은 오랜 친구인 포린의 말과 행동에 실망하고 마음을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시장의 편에 서서 자신도 포린만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우리가 포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누구나 공감이 가는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거야.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인물에 감정 이입이 되곤 해. ‘그래,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몰입하게 되지. 그런데 그 인물의 생각과 행동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아.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른 등장인물과 갈등을 겪고 풀면서 성장하고 변화해 나가지. 그래서 우리는 소설(동화) 속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인다고 말해.


아빠는 포달이 놀이공원의 지하연구소에서 토린을 만나 그간의 서운함과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에서 나아가, 토린과 갈등을 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포달의 말을 들은 토린의 심리 묘사에 비해 포달의 심리 묘사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또 한 가지 그렇게 갈등을 해결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종사하는 생산팀 일도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이야기에는 또 한 명의 문제적 인물이 등장하지. 인간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으로 복수를 계획하는 시장 말이야. 흔히 말하는 악당 캐릭터인데,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주동인물, 프로타고니스트)과 대립하는 반동인물이라고 해서 ‘안타고니스트’라고 말하기도 해.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안타고니스트가 큰 인기를 끌곤 하지. 주인공을 괴롭히고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당에게 공감하는 것은 그에게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야.


감상문에서는 시장의 행동을 감정과 이성의 문제로 파악했는데, 아빠는 시장의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 표현으로 “아니,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혼잣말이 나온다면 악당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악당 캐릭터에도 주인공만큼의 심리 묘사가 필요하고,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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