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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25. 2023

김혼비 <다정소감>, '가식에 대하여'

가식과 솔직 사이에서

제 성격이 꽤나 원만한 줄 알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는 한정된 범주 안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면 되었으니까요.


내 성격이 부러지는 데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회사 생활을 한 시간이 쌓여가면서일 겁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복잡다단한 조직의 상황들 속에 변해가는 모습들 속에서 좌충우돌 하는 제 모습을 발견한 거지요.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선의를 갖고 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준을 벗어나는 사람이나 나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대해야 할 때는 나의 마음과 언행을 다스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욱해서 감정을 쏟아버리기도 했고, 이미 지난 상황을 집에 가서까지 다시 떠올리며 속을 끓인 적도 많았지요. 반갑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적정선을 지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조직생활을 하며 겪는 참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 <다정소감>에는 여러 주제에 대한 예리한 묘사와, 깨알 같은 그만의 유머가 담겨 있지요. 그 중 '가식에 대하여'라는 글을 읽으면서는 이 작가가 인간의 가식과 솔직에 대하여 6장 가까이 사유하고 통찰할 수 있다는 데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은 '솔직함'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곤 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가식'이란 것이 조직의 분위기를 어떻게 매끄럽게 만들고,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의 경험을 통해 잘 풀어놓았더군요.


그는 회사 생활 중 상반되는 유형의 두 팀장을 연달아 겪으면서 가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A 팀장은 대체로 솔직하고 위악적이던 사람이었고, B 팀장은 동료들 사이에서 가식의 표본으로 평가되던 사람이었다고 해요. A 팀장은 자신의 감정을 거르지 않은 채 그대로 쏟아부어 상황마다 폭탄을 던지곤 했지만, B 팀장은 꽤 오랜 기간 자신이 설정한 '선'의 모습으로 팀원들을 대하기를 그치지 않았답니다.


A 팀장을 겪어봤던 팀원들은 B가 좋은 리더인 척을 멈추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무서워서, 그들 역시도 팀장을 믿고 좋아하는 팀원으로서의 연기에 충실하게 되었는데, 그 속에 분명 '서로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노력과 노력이 만나 빚어내는 존중과 다정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그 노력이 3년을 넘어가면서 부터는 팀장의 가식적인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는 착각에까지 이르게 되어 진짜로 팀장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죠.


그리하여 그가 얘기하는 '가식에 대한 변(辯)'은 이렇습니다. 가식적인 사람은 적어도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위선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요. (물론 타인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없는 한에서의 가식을 말합니다.) 그의 모든 행동이 아직 본심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그 모습도 자신의 진실한 모습 중 하나일 테니까요. 반면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솔직'이라고 한다면, 그 솔직은 상대를 위해 내 부끄러운 부분까지도 꺼내어 위로할 수 있는 솔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의 행동에 대해 돌아봅니다. 여전히 나는 진실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솔직한 소통을 원한다는 나만의 욕구와 명분 하에 '아무런 포장 없이 자신의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진 않았는지요. 솔직도, 가식도 모두 필요한 삶의 기술일진대, 이를 적절하게 익혀 사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식과 솔직 사이, 당신의 행동은 어디쯤 와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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