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쓸만한 인간'이 되기까지
배우 박정민의 산문집을 읽었다. 그는 <응답하라 1988>에 성보라의 못된 남친으로 나오는 그 잠깐 동안 정말로 못돼보여서 '저 배운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영화 <동주>에서는 동주보다 더 눈에 띄는 송몽규를 연기해 눈여겨 보았던 배우이다. <쓸만한 인간>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에는 연기라는 불안정한 길을 선택한 청년의 '늦됨'에 대한 불안과,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여린 감수성을 다쳐가면서도 성장해가는 한 인간의 자기고백이 담겨있었다. 이 모든 내용 안에 시도때도 없이 던지는 유머가 끝없이 이어져 책을 읽는 내내 키득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책장을 넘기며 큭큭거리고 웃다가 멈춰선 건 '엄마'라는 글에서였다. 글 속에서 그는 본인과 싸우고서 하염없이 우는 엄마를 보며 그저 '갱년기인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아빠는 그런 아들에게 '엄마의 갱년기는 진즉에 끝났고 그냥 너새끼 때문에 우는 거'라고 하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아들의 눈치를 보며 "너도 한 번 와봐야지" 하고, 자기 엄마가 죽었는데 아들의 눈치를 보는 엄마를 보며 아들은 '시발 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생각에 화가 났단다. 글을 읽으며 마음 찡하고 목구멍이 울컥 차올랐던 건 엄마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왜 아파하고 왜 내 눈치를 보는지를 잘 모르는, 투박하고 철없는 아들의 모습에서 나의 남동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감정이 격해질 땐 여동생과 같이 '쓰레기같은 놈'이라고 욕하기도 하는 그녀석은 수년째 엄마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는 중이다. 고딩 때는 늦잠을 자느라 등교 시간이 다 되도록 안 일어나기 일쑤였고, 몇 번을 방문 앞에서 소리쳐도 끄떡없는 저놈을 깨우다 우리 엄마 명줄이 줄어들겠다는 생각을 한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방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책에서는 도통 공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던 녀석이,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학교 생활과 전공 공부에 적응하지 못해 학사경고를 연짱 세 번을 받아냈다. 졸업할 나이가 애저녁에 지났는데, 제멋대로 휴학계를 걸어놓은 그녀석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한다.
수능 이후로는 집에서 일절 용돈을 받지 않았고, 이제는 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누나들과는 달리, 그녀석은 제 몫의 역할을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하위의 성적표가 방에서 발견되고, 학교에서는 '이 학생을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전화가 오는데도, 그녀석은 당당하게 철마다 제 옷 살 돈, 핸드폰비 등을 요구했다. 아직 어린 아들이 부모에게 옷 사달라고 하는게 뭐 대수냐 할 수도 있겠으나, 나와 여동생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부모님께 죄송해서 아예 손을 벌리지 않았기에 우리집에서 그녀석의 행동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있어서 제 앞길을 닦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안자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실갱이를 하고 때로는 큰소리를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생일 때마다 막내라고 용돈과 선물은 받아 챙기면서, 저는 가족들에게 작은 정이라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이 답답하고 화가 나면서도, 수도 없이 그녀석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주 눈물을 쏟아야 했다. 내가 잘못 가르쳤나 싶어서, 저 아이에게 무슨 결핍이 있는가 싶어서, 엄마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아들이 속상해서, 제 밥벌이는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가 힘들고, 얼굴을 봐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은 말을 카톡과 메일에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아들은 그런 엄마의 애끓는 심정을 다 알 리가 없었다. 대화를 청할라치면 짜증 먼저 냈고, 참다 못해 큰소리가 나면 그것이 더 큰 불길로 번지기도 했다. 아마 그녀석도 뭔가 모르게 미안하면서도, 뭐가 문제인지 깊이 인식하지는 못한 채 통제받는 듯한 상황이 답답했을 것이다. 내가 박정민의 '엄마'라는 글을 읽으며 울컥 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오랜 시간 엄마 밑에서 자라온 엄마의 아들이면서도, 엄마에 대한 아들의 이해와 공감의 폭이란 참 표면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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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녀석이 원래부터 그러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땐 학교 바자회에서 500원을 주고 사온 옷 선물로 엄마를 기쁘게 했고, 엄마가 아파서 앓아누웠을 땐 쟁반에 직접 밥을 차려와 엄마 입에 떠넣어주던 아이였다. 작은누나와는 열광적으로 다이어리에 포켓몬 스티커를 모아댔고, 생일 땐 큰누나를 놀리는 멘트와 함께 축하 편지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남매가 한 식탁에 모여앉아 각자 반에서 누구를 좋아하는지를 조심스레 고백했고, 셋이 부르마블을 하다 게임에 지면 판을 엎고 엉엉 울기도 했다.
그녀석이 중학교에 들어가던 무렵 아빠의 병이 본격화 되어 엄마는 갑자기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아빠의 병 수발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에 나가고, 한창 자라나는 삼남매를 키워내느라 엄마는 하루하루가 정신없고 또 막막했을 것이다. 집안에 웃음은 사라졌고, 건조하고 불안한 공기가 종종 집안을 메웠다. 그때 우리가 그 시간을 견뎠던 방법은 서로를 격려하고 위해주기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 시절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타고 다니던 킥보드를 보며, 고등학생이던 나는 우리 남동생에게는 그것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엄마에게는 다른 아이들은 다 그것을 갖고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심적 여유와 그걸 사줄 경제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나는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도 돈이 없으니 동생에게 킥보드를 사주지도 못했다. 엄마가 절박한 마음으로 동네 엄마의 가게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을 때, 그 엄마는 남동생의 같은 반 여학생의 엄마여서, 나는 사춘기 남학생의 감수성이 걱정되면서도 또 모른척 할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채 동생도 자라고 나도 성인이 되기까지, 동생이 가져왔던 마음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성인이 된 후 동생의 속마음은 단 한 번, 훈련소에서 구구절절 보내온 7장의 편지에 적혀 있었다. 내가 엄마였으면 진작 이혼했을 것이니, 아빠는 엄마에게 잘 하셔야 한다는 내용으로. 십수년 간의 병마와 약물 치료로 자기 통제의 힘을 잃어 걸핏하면 식구들에게 퍼부었던 아빠를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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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하는 마음을 붙잡고 산문집을 계속해서 넘겼더니 이번엔 유기견 이야기가 나온다. 강아지가 너무 갖고 싶어서 15만원을 주고 강아지를 사서 '복'이라고 이름 짓고 예뻐했는데 사실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라 "엄마! 엄마 생일 선물! 완전 귀엽지!" 하고 엄마에게 넘겨 버린 이야기다. 저 하나도 간수 못해 강아지를 키우기엔 너무 무능력했던 청년이, 길가에서 만난 유기견을 어쩌지 못해 또 자취방으로 데려왔단다.
밖에서 고생했을 덕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 오랫동안 밖에서 먹고 잤을 녀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너무나도 착한 눈으로 꼬리를 흔드는 이 녀석이 왜 버림을 받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아직도 치석이 많이 껴 있고 각질이 떨어지지만 사상충 치료 때문에 스케일링도 피부 치료도 뒤로 미뤄야 한단다. 입 냄새가 진동을 하고 집 안에 각질이 부스스 떨어져 있어도 덕이의 평생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말썽을 피워도 가끔 우울감에 토라져 있어도 전부 다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동생이 생각난다. 동생은 자기는 동생이 없어서인지 그렇게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다. 집안일이 더 늘어나는 걸 끔찍해하는 엄마 때문에 더 말을 꺼내지 못하지만, 여자친구 강아지를 예뻐하던 동생을 보며 저 아이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을 표현할 기반이 아직 잡히지 않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일 뿐. 저 하나도 간수 못해 강아지를 키우기엔 너무 무능력했던 청년처럼 앞으로도 얼마간 성장통을 겪을지언정, 무언가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무언가를 향한 의지의 발로가 되기를 바란다.
동생아 그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