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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ug 19. 2017

영화 <더 테이블>

작은 소품의 가까이에서

어려서 피아노를 배울 때 난 소곡집이 좋았다. 우선 쉬웠다. 도대체 무슨 전개일지 모를 다른 연습곡들에 비해서 소곡집에 있던 곡들은 멜로디가 쉽고 감상적이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엘리제를 위하여, 은파, 트로이메라이... 소곡집에 담겨있던 노래들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선율로 귀와 마음을 한껏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오래 칠 필요도 없었다. 대부분 3-4분이면 끝나는 짧은 노래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1시간 10분의 짧은 영화 <더 테이블>은 작은 소품 같은 영다. 예쁘고 산뜻한 분위기의 배경과 단순하고 간결하기 그지 없는 영화적 장치 지닌. 하루의 시간 동안 카페 창가의 한 테이블 네 인연들이 차례로 머물다 간다. 이게 다이다. 카페는 한적한 성북동이나 삼청동 골목 어디쯤에 자리잡은 게 아닐까 싶은데, 카페가 자리한 위치 만큼이나 카페의 내부도 예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내내 잔잔하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주인은 가만 앉아 책장을 넘기다가 손님이 나간 후와 새 손님이 들어올 때만 나섰다 물러나는 평화로운 카페. 그래서인지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사람들의 대화도 숨을 쉬듯 유유히 흐른다. 마치 소곡을 이끌어가는 멜로디의 연결처럼.

다른 영화라면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는 사건이 등장하겠지만(장대한 스케일의 교향곡의 구성처럼) 이 영화를 채우는 것은 여러 사건 대신 네 인연들이 나누는 대화이다. 그것이 <더 테이블>이 지닌 단순한 멜로디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그 멜로디가 절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안에는 오랜만에 만난 인연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있고,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해 내내 퉁명스러웠지만 작은 진심에 다 풀려버린 웃음이 있다. 또 거짓 속에도 담겨 있는 진심의 여운이 있고, 선택을 앞두고 어쩔 줄 모르고 헤매이는 마음이 있다.


음악을 들을 때 현과 건반의 미세한 떨림을 하나하나 느끼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그들이 하는 말과 그에 반응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관찰하며 주의를 집중한다. 테이블을 앞에 두고 그들이 던지고 받는 감정과 마음의 핑퐁을 보기 위해. 그 핑퐁은 때로 나가지도 못하고 마음에만 머물거나, 상대에게 온전히 가닿지 않고 허공 속에 흩어지기도 한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의 얼굴을 비추다가, 앉아있는 모습을 비추다가, 어느 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만 크게 잡히도록 오래도록 클로즈업을 하기도 한다. 인물들 뿐 아니라 그들이 앉아있는 카페의 외경에도 마찬가지다. 프레임은 둘이 앉아 있는 카페의 창이 전부였다가, 그 옆의 한복집도 같이 들어갔다가,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카페 밖의 두 사람으로 바뀌기도 한다. 마치 카메라도 그들의 대화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변주를 하는 식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의 이 소품같은 영화는 사뿐히 다가와 우리의 눈과 귀, 마음을 간질인다. 관객은 영화의 대사가 데려가주는 작은 재치와 재미, 긴장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즐기게 될 것이다. 또 어느덧 우리가 일상 속에서 나누거나 엿들었던 여러 대화들을 반추하며 빙그레 웃음짓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곡을 즐길 때의 기쁨이다. 만약 <더 테이블>이라는 제목의 소곡이 있었다면 아마도 단순해 보이는 외관 안에 한없이 경쾌하고 쌉싸름한 느낌의 어떤 곡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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