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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18. 2019

비슷한 꿈을 꾸는 누군가를 찾아서.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화.

먼저, 이 글의 등장인물을 소개할까 한다. 


한 사람은 휴대폰회사에서 모바일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젊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

한 사람은 침구회사 영업기획팀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두 아이의 아빠.

또 한 사람은 광고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골드미스 or 올드미스. 


우리를 처음 만난 이들은 직업도 나이도 환경도 다른 세 사람이 서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열린옷장'이라는 난데없는 일을 어떻게 함께 저지르게 되었는지 누구나 궁금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셜디자이너스쿨에서 만났습니다"라고 답하면 반드시 또 묻는다. “그게 뭐에요?"


소셜디자이너스쿨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독립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운영하는 단기 프로그램이다. 대개 승진과 연봉보다는 꿈과 행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측면으로 조금은 현실 감각이 부족한 2,30대의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모인다. 강의실 벽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캐치플레이즈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디자인하라!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사회혁신가들이 모이는 건 절대 아니다. 대부분 열정은 있으나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라서 번뇌에 빠져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3개월 정도의 과정은 뭔가를 배운다기보다는 '어렴풋이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누군가'를 만나 함께 듣고 말하고 생각하며 그 답을 찾는 시간이랄까.. 우리 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하나 있다. 마지막 날,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하나씩 발표해야 한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몇 개의 조로 나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아이디어를 찾는다. '열린옷장'은 바로 그 발표를 위해 만들어진 아이디어이다.  


사실상 우리 세 사람은 관심사조차 비슷하지 않았다. 누구는 '먹거리', 누구는 '나눔', 누구는 '시각화를 통한 참여증진'이라는 지금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의 조에 속해 있었다. 모바일 연구원 그녀가 500cc 생맥주잔을 들고 가슴이 두근거릴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 집에 노는 방이 하나 있거든. 우리 회사에 입사면접 보러 지방에서 오는 대학생들 대부분 근처 모텔에서 잔다고 하더라고. 여학생들은 좀 재워주면 좋겠어. 그러면 아침에 면접 보러 갈 때 내 정장도 빌려줄 수 있을 텐데...입사할 때 입고 거의 안 입는 정장이 여러 벌 있거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오~좋다"라고 동감했는데, 그 때 유독 우리 세 사람은 그 아이디어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그 두근거림이 지금 '열린옷장'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 


발표 준비는 주로 강남역에서 이루어졌다. 서로 집이 먼 탓에 제일 복잡하고 시끄러운 주말 오후의  강남역 커피전문점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이번 주엔 어디서 만날까? 좀 조용한데 없을까?” 

“미안...이번 주는 주말에도 출근해야 해. 메신저로 얘기하고 이메일로 정리하자” 


다들 야근 많은 직장을 다니다보니 그나마도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 '열린옷장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 파일은 수원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수원으로 왔다 갔다 잦은 여행을 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완성이 되어 갔다.  


취업이 어려운 청년구직자에게 정장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발표의 컨셉을 뾰족하게 다듬고... 설문을 통한 수요조사, SNS를 통한 홍보와 참여촉구, 의류회사 및 일반기업에 기증요청, 의류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액션플랜을 세우고.... 기존의 정장대여점과 확실한 차별점을 두기 위해, 기증자에게 옷에 담긴 이야기와 응원메시지를 함께 기증받아 청년구직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도 덧붙이고.... 


그런데 이름은 뭘로 하지?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냥 '열린옷장' 어때?


이름이 너무 평범한 것 같아 바꿔볼까 하는 고민을 잠깐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열린옷장’보다 더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은 없겠다는 결론에 더 이상은 고민하지 않는다.


그 첫 발표자료 중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 "OO씨의 첫 번째 정장"이라는 코너를 개설해 청년들이 선망하는 유명인의 정장을 매주 기증받는 것이다. 옷에 담긴 사회초년병 시절의 경험과 메시지를 더 많은 청년구직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기획인데, 언젠가는 꼭 실행하리라 생각하며 여전히 ‘Keeping’ 중이다. 


그렇게 주말과 퇴근 후의 휴식을 포기하고, 꿈이라도 꾸듯 준비한 열린옷장 프로젝트. 

소셜디자이너스쿨 10기 수료식이 있었던 2011년 11월 19일 오후 2시경, 10여분의 짧은 발표를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당시에는 그저 짧은 교육과정을 수료하기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눌한 PPT자료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단지 발표로만 끝나지 않을 앞날을 예견한 듯 이렇게 쓰여 있었다. 


SDS 10기는 끝났지만 
열린옷장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열린옷장이 사람과 사람을 활짝 엽니다. 
세상을 활짝 엽니다.





Tip for your start.

좋은 동료를 찾지 못하면 아이디어는 무용지물!


'끝내주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끝내주는 능력자들이 저절로 함께 할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스타트업을 시작해보면 쉽게 말해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게 된다. 또한 자금, 아이템, 네트워크 등 스타트업에 꼭 필요한 몇 가지 중 '사람'이 가장 소중한 요건이라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좋은 동료를 만나기 위해 내가 먼저 노력해보면 어떨까? 프로그램, 세미나, 동호회...그 곳이 어디가 됐든 나와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적극 찾아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1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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