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9화.
지금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가? 혹은 앞으로 할 계획인가?
그렇다면 속해있는 조직이 한달 동안 사용하는 경비를 그래프로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크건 작건 거의 대부분 하늘을 찌를 듯 가장 높은 그래프는 급여. 그 다음으로 높은 그래프는 뭘까? 조금 우아하게 표현하면 공간비용, 라이브하게 말하면 '월세'다. 정말 운이 좋아 월세를 낼 필요없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특히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매달 극심한 월세의 고통에 시달리고 계시다.
우리 또한 그 고민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제법 기증된 정장이 많아지자. 여럿이 함께 쓰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달랑 하나 빌린 책상 뒤의 1단 짜리 행거는 2단 짜리 행거로 바뀌었다. 더이상 옷을 걸 곳이 없어 계절에 맞지않는 옷은 박스에 담아 구석에 두었는데, 박스도 더이상 쌓아둘 곳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더이상은 책상 하나로 버틸 수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피팅룸이었다. 그 때까지도 대여하러 오신 분들을 화장실로 안내하는 재미없는 시트콤같은 짓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오래전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첫 장면을 보면, 문근영과 사귄지 오래되었지만 청혼하지못하는 남자친구가 저 멀리 아파트촌의 불빛을 보며 절규한다. "저렇게 수많은 아파트 중에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없어. 아무리 벌어도 마이너스야. 절대 플러스가 안된다고!!!"
딱 우리의 심정이 이랬다. 거리에 이렇게 많은 빌딩들, 게다가 경기침체 때문인지 빌딩마다 'RENT'가 붙어있는 빈 사무실 천지인데 우리가 갈 곳은 없었다. 우리의 능력으로 제 값을 지불하고 입주한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찌어찌 각출하고 자금을 모아 보증금과 월세를 장만한다고 한들, 당시의 수익으로는 밥도 못 먹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불과 1년여 전인데, 우리에게는 수입과 지출을 적을 장부도 따로 필요없었다. 급여는 서로 눈 딱 감고 패스! 식대 등의 자잘한 경비는 매달 조금씩 각출한 그때그때 되는대로! 수익이라고는 하루에 한두껀 있는 대여비로 들어오는 1,2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쨋든 '공간'은 필요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각자 주변의 모든 루트를 동원해 남는 공간을 제공해주실 분이 없는지 발품 팔아 보기로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로도 되는대로 요청해보았다.
알아본지 한 달여 만에 연락이 왔다. 아는 선배의 친구의 후배 쯤 되는 분이 건너건너 우리 이야기를 들으시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건너고 건너 연락처을 받았다. 통화를 해보니 '사일렉스'라는 무척 어려운 이름의 IT벤처기업 대표님이었다. 직원이 6명 정도인데, 사무실과 따로 된 직원들의 휴게 공간에 여유가 있으니 일부를 사용해도 좋다는 것이다. 위치는 화양동 건국대 앞이었다.
드디어 우리 만의 공간이 생기다니! 바로 달려갔다. 연락을 주신 대표님은 30대 초반의, 외관상으로는 20대 같은 느낌의, 생각보다 더 젊은 분이었다.
대표님 역시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몇 년간 회사를 꾸려오면서 수익을 내는 일 외에 좀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열린옷장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공간을 나누는 것 말고도 서로 뭔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 연락을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공간도 감사했지만, 대표님의 '열린 생각'을 들으며 앞으로 한 수 배울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난듯한 좋은 예감에 더 설레었다. 예감대로 지금 사일렉스의 개발자 분들과 열린옷장은 정기적으로 미팅을 하며 열린옷장의 '혁신적인 웹사이트' 개발을 진행 중이다.
2013년 10월 3일 개천절에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지만, 화양동으로 이사를 한 후 열린옷장은 화양연화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기증도 대여도 훨씬 많아졌고, 따로 마케팅 홍보 활동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특히 이 곳에서 너무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다. 열린옷장에 남성패션기업 '더셔츠스튜디오'는 같은 건물에 본사가 있어 셔츠와 구두를 꾸준히 기증해주셨다. 여성패션기업 '발렌시아'는 바로 길 건너에 본사가 있어 시즌이 바뀔 때마다 산책하듯 걸어가 기증을 받아오곤 했다.
계약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떡 하니 밀고 들어와 건물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는데도 건물주 어르신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좋은 일 한다며 응원해주시곤 했다.
지금쯤, '열린옷장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스스로 해낸 게 아무것도 없잖아' 하고 투덜거리는 분들이 계시리라.
확실히 맞는 말씀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 안에서 항상 고민하고 노력했다. 감이 나무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운'이라는 녀석도 나무에서 떨어져 준게 아닐까 생각한다.
Tip for your start.
당장 수입이 없을텐데 어떻게 하지?
당장 시작할 자본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창업을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가장 현실적인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답은 없다. 내 능력에 맞는 창업 아이디어와 실행안을 만들고, 능력되는 한 비상식량을 비축해두고 버티는 수밖에... 그것이 자신없다면 당신은 아직 스타트업을 외칠 때가 아니다. 그 마음이 생길 때까지는 잔근육을 키우며 좀더 준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출발하는 것보다, 지치지않고 계속 걸어가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우니까 말이다.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 9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