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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옷장지기 소령님 Mar 31. 2019

이 많은 대여자, 어디에 있었을까?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4화.

옷장 속에 잠들어있는 내 정장,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굴까? 

그래! 입사 면접을 앞둔 청년구직자!!!

대한민국 청년구직자가 몇 명이나 되는데? 무려 100만?

그럼, 100만 중에 1%만 열린옷장을 찾아온다면......!!!!!!


애초에 우리의 계산은 이랬다. 분명 열린옷장 아이디어는 정장을 통해 청년구직자들을 응원한다는 사회적인 가치는 물론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지속가능성도 핑크빛이었다.


하지만 앞서 제7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야심차게 서비스를 오픈하고 무려 7개월간이나 대여자 한 명 없는 시커먼 터널 속을 헤매야 했다. 7개월 만에 첫 대여자가 찾아왔지만 그 후로도 많아봐야 하루에 두세명이 찾아오는 어둠의 나날들은 계속되었다. 


가치있고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다 좋은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오픈 전, 창업 전문가분들에게 멘토링을 받았을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이디어는 재미있는데, 국내의 문화로 볼 때 '대여'로 성공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면접같이 중요한 자리에 과연 남이 입던 오래된 양복을 빌려입고 갈 사람이 있을까요?"

"정장을 한 곳에 모아놓으려면 엄청난 공간비용과 관리비용이 들어갈텐데 수익성이 의심스러워요"


재미는 있지만 먹고 살기는 힘든 아이디어. 창업 아이디어로는 최악이다. 비록 '비영리 스타트업'이라고 하더라도 이 험한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영리기업과 전혀 다르지 않다. 수익성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전문가들의 예리한 견해들을 다 흘려들은 값을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래도 남의 말 잘 안 듣는 우리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잘 될거야'라는 무모한 자기합리화로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버텼다.


'7개월 만에 찾아온 첫 대여자' 후로 '많아봐야 하루에 두세명'의 날들이 계속되는 동안 계절은 무려 세 번이나 바뀌어 2013년 5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은 정확히 5월의 첫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아침에 눈뜨고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시작된 날이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다같이 여유만만하게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늘 조용한 건물의 복도가 시끌시끌하더니 대학생 서너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마도 가끔씩 오곤하는 대학생 단체 탐방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대여를 하러왔단다. 다함께 면접을 보느냐고 물으니 졸업앨범 사진을 찍어야한단다. 


아하~졸업이라면 2월만 생각했는데 그래~ 졸업앨범 사진은 5월에 찍는거지!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때도 정장을 입어야하는데 대학생들 대부분은 정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추억을 위한 사진 몇 장 찍자고 수십만원 짜리 정장을 사기엔 부담스러운 그들에게 열린옷장은 정말 반가운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숨어있던 대여자군을 발견했다. 더구나 새로운 대여자군은 정말 고맙게도 입소문이 빨랐다. 한 명이 다녀가면, 다음 날에는 서너명의 친구들이 같은 과 친구한테 들었다며 찾아왔다. 다음 날에는 옆 학과 친구한테 들었다며 한 무리가 찾아오고, 그 다음 날에는 다른 학교 친구한테 들었다며 더 큰 무리가 찾아왔다. 


그렇게 졸업앨범 사진촬영은 6월 초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5월 한달 총 매출을 정산해본 후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조금 더 노력하면 먹고 살 수 있겠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한 달간의 달콤한 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물론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한 번 큰 바람이 불고 나자 그 바람은 또 다른 순풍들을 몰고 온 듯 했다. 결혼식에 가려는 직장인들, 공연을 위해 정장이 필요한 동아리 학생들 등 정장을 필요로 하는 층이 다양해졌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졸업앨범 사진을 찍었던 학생들이 면접준비를 위해 재방문하는 숫자도 많아져 전체 대여자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누적 대여자수는 10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열린옷장은 '성공'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성공적인 수익모델로서의 검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열린옷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욱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세상이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믿음으로.  





Tip for your start. 


"때로는 컨셉이 사업 잡는다"

언젠가부터 '컨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흔히 사용되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대할 때마다 "도대체 컨셉이 뭐야?"라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업계획에 있어서도 '컨셉'에 대해 날을 세우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있다. 컨셉이 분명한 사업계획서는 분명 완성도가 있어 보이지만, 과연 시장에서도 그럴까? 컨셉이 분명한 것은 좋지만, 너무 분명한 컨셉 때문에 시장이 너무 좁아진다면 사업에는 치명적이다. 지금 추진 중인 당신의 사업 컨셉, 이런 관점으로 다시 한번 두드려보면 어떨까?



[ 열린옷장, 비영리로 스타트업하기 ] 제14화 끝.

* 본 글은 2013년 <다음 스토리볼> 연재본을 리라이팅하여 포스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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