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가 바뀌는 시기엔 아무래도 바쁘다.
12개 지자체와 협업을 하고 있다보니 마감에 필요한 서류작업이 만만치 않다.
마음은 바쁘고, 대여 업무를 마감하는 저녁 8시가 다 되었는데 예약자 중 1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남양주에서 오고 있는 중인데 8시가 다 되어야 도착할 거 같단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검문 때문인지 서울로 오는 길 위에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란다.
평소에 옷장지기들에게 '대여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예약시간 엄수에 대해서 만큼은 엄격한 편이다. 이용자는 좀 늦은 것 뿐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음으로해서 옷장지기들은 예기치 않은 시간외 근무를 하게 되고 그런 일이 잦아지면 업무 스트레스가 되어 방어적으로 서비스를 하게 된다.
열린옷장 초기에는 당연히 이용자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9시, 10시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것만으로도 보상받는 기분이었는데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런 식으로는 오래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가능하면 예외없이 예약시간은 지키도록 하고있다.
다만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학교와 학원에 알바까지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느라 낮 시간에 움직이기 어려울 것을 고려해서 올해 7월부터는 저녁8시까지 운영시간을 확대했다. 그런데도 운영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은 늘 생긴다.
한참을 기다리다 어디쯤 오고 있는지 다시 전화를 하니 버스로는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중간에 내려 지하철을 타려고 한단다. 어째 도착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듯 한데, 바로 내일 모레 면접이라고 하니 돌아갔다가 다시 오라고 할 수도 없다.
일단 8시까지 근무하는 옷장지기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도착하면 빌딩 1층에서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도록 안내한 후 지하 사무실로 내려갔다. 쌓인 서류작업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일을 하고 있자니, 30여분이 지나서야 1층에 도착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여학생이 꽤나 애를 태우면서 이 밤중에 남양주에서 건대앞까지 왔다. 불을 꺼둔 공유옷장의 불을 다시 켜고 퇴근 전에 옷장지기가 키와 몸무게를 미리 물어 준비해둔 옷을 입어 보시라 했다. 다행히 옷이 딱 예쁘게 맞는다. 먼 길을 온 취준생 분도 안심하는 눈치다.
입어본 정장을 포장하며 이야기 나누다보니 간호사 채용 면접에 간다고 한다. "어떤 병원이 취업하기 좋은 병원인가요?"하고 물으니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같은 대형병원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을 한다. 노조가 있는 병원이라고 한다. 요즘 '태움'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입사를 하기도 전에 혼자 감당하기엔 무거운 부당함을 미리 걱정하다보니 노조라도 있어야한다 생각하는 것이 안쓰럽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노조가 있는 병원의 입사면접을 앞두고 있으니 꼭 잘 되면 좋겠다.
한참 남은 일을 하고 있자니 톡이 울린다. 아까 다녀간 취준생이 커피 쿠폰을 보냈다.
"저 방금 면접복 빌려간 학생입니다! 퇴근시간이신데 오래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ㅎㅎ"
덕분에 행복한 밤이다. 이 맛에 옷장지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