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을 넘는 일, 글쓰기
우리 동네에는 축구하는 멋진 ‘언니들’이 있다. 공을 왜 쫓아다녀야 하는지 모르는 내가 감히 축구 경기로 스토리텔링을 설명했다. 글쓰기의 묘미라고 해두자.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축구 경기에 비유해서 글쓰기 워크샵 제목(인생은 전반전보다 후반전)을 짓고, 4주차 강의를 구성(전반전-하프타임-후반전-연장전)하고 수강생분들 글을 모아 책도 엮고 있다. 축구에 관심이 없던 내가 하마터면 축구부에 들어갈 뻔도 했다. 혼자라면 상상도 못하지만 '언니들'과 함께라면 나도 모르게 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축구는 이번 생에 비유로만 두기로 했다.
공은 굴러다니라고 있다. 발에 자석처럼 붙었다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순 없다. 공을 잘 다룬다고 해서 내내 혼자 갖고 있을 수도 없다. 공은 예측불허 시공간을 매 순간 오고간다. 다행히 혼자 공을 따라다니지 않아도 된다. ‘팀플레이’, 그 아름다운 해법이자 구원이 있다. 게다가 모든 스포츠는 뛰는 선수들만의 것도 아니다. 필드 안팎에서 함께 호흡하며 함께 뛰는 경기! 삶도 글쓰기도 함께 할 때 지치지 않고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4주 동안 전개해온 ‘글쓰기 워크샵 서사’도 수강생들과 함께 라서 한편의 이야기로 완성할 수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삶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꺼내 놓기 쉽지 않은 인생 서사와 고통의 경험을 공공재로 내어주며 함께 산을 넘은 수강생(이라고 쓰고 준비된 작가라고 읽다)분들에게 축하와 경이를 보낸다. 4주 글쓰기 워크샵으로 A4 138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완성했다. 수강생들의 초고를 기다리고, 피드백을 반영해서 퇴고를 여러 차례 거친 최종고를 모아 책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멈추곤 했다. 여성 서사를 함께 통과해 온 '그녀들(우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응답하느라.
SNS에 올리는 피드 글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구성을 의식한 글쓰기는 처음인 분부터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분까지. 워크샵을 함께 한 분들의 시작은 달랐지만 저마다 인생 서사를 돌아보고 재구성해서 한편의 새로운 글에 도착한 것은 같았다. 최소 A4 3매부터 최대 A4 16매까지 분량도 다양했다.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한 글이 아니라, 초고를 제 시간에 마감하고 수정을 거쳐 완성도가 올라간 '최최최최최종고'를 제출한 수강생들에게 재차 박수를 보낸다.
지인들에게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인생 서사를 바라보면 지금 눈앞에 놓인 일과 관계가 다시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지인들은 스토리텔링과 삶을 연결하는 방법을 더 들려달라고 했다. 지인의 제안으로 구로평생학습교육원에서 <내 삶을 스토리텔링 하는 글쓰기>을 시작했고, 마포여성동행센터에서 4050 전환기를 맞은 여성 글쓰기 워크샵 <인생은 전반전보다 후반전>을 이어서 진행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전공하고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 대상으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워크샵은 처음이었다. 강좌 안내와 모집 공고가 나가자 빠르게 정원 마감이 되었고 추가 모집으로 이어졌다.
4주 동안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스토리텔링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글쓰기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힘들어도 끝내 자신의 삶을 한편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한편의 글로 완성한 수강생들은 깊은 만족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이 삶을 다시 읽고 새로 쓰게 한다는 사실을, 사석에서 느낀 그대로 공적인 워크샵에서도 확인했다.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글쓰기 워크샵> 연재를 시작으로, 온-오프 글쓰기 워크샵 경험을 나누고 더 많은 분들에게 ‘스토리텔링’이라는 도구를 안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