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볼 수 있는 시간
2023년 12월 22일 나는 공식적인 엄마가 되었다.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원래 엄마였던 사람처럼, 이 작은 아기가 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 나의 헌신이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 한동안은 이렇게 지냈다.
나는 없고 엄마만 있었다.
2024년 8월쯤 남편이 아이패드를 선물로 줬다. 그냥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비싼 아이패드이기도 했다.
평소에 책 읽고, 글 쓰는 것에 흥미가 있으니 이참에 새로운 아이패드로 글을 한번 써보라고 했다.
당연히 애플펜슬도 있었다.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사실 선물 받은 아이패드가 주는 기쁨에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글 쓰는 일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긴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만만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고, 뭐.. 딱히 시작할 동기도 없었다.
브런치스토리라는 곳도 남편이 알려주었다. 출퇴근시간에 즐겨 읽는다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글들이 많다고 했다.
오호, 나도 한번?! 오랜만에 불끈불끈 도전의식이 생겼다.
2024년 9월 초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메일 제목이었다.
고성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차 안 이었다. 어떠한 합격소식보다 더 좋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로지 내가 이뤄낸 성취감이었다.
출산할 때는 아프기만 했는데, 브런치작가 축하 메일은 좋기만 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부분이 작가라니!
쉽지 않은 도전이라 생각했는데 한 번에 붙었다! 세상에나 오 마이갓 이런 일이!
이미 나는 아주 우아하고 시크한 브런치 작가가 되어있었다. 때로는 창작의 고통도 느꼈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글쓰기.
아기 재워놓고 틈틈이 메모해 두기.
내 인생에서 이야깃거리 찾기.
주기적으로 연재해 보기.
인기 작가가 되기.
브런치작가 2일 차의 감성을 담기엔 고성바다만 한 곳이 없었다.
아침 바닷바람을 느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도 평범한 엄마가 되었구나. 내 세상의 중심이 아이가 되었구나.
나란 여자가 평생을 엄마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내 옆에서 남편이 먼저 깨달았구나.
아이패드는 값비싼 핑계였다. 남편은 글의 힘을 믿었고, 그 힘을 이렇게 나에게 주고 싶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or 엄마가 될 뻔했는데, 나 and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구나.
직접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이런 순간을 글로 남기는 것 또한 떨리고 설레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여권에 다양한 모양의 도장을 찍는 기분이랄까.
비행기에서 내려 여권도장을 받을 때면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설레고 기분이 좋다.
다양한 경험이 시작되고 추억이 쌓인다. 웃픈 에피소드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기도 한다.
새하얀 바탕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여권에 도장이 찍힌 듯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래서 설레고 긴장도 된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완성될까.
나에게 여행이란 매번 새로운 행복, 즐거움,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운다.
그 속에서 위로받고, 고민하며 인생을 톺아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나는 또 한걸음 나아가려고 한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인생을 살아보려는 나에게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게 해 준다.
2025년 9월,
벌써 20개월이 된 아기는 어린이집에, 나는 잠깐 집안일을 모른척한 채 단골카페에 앉아 글을 조금씩 쌓아가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육아라는 단조로울 수 있는 일상에 이 시간은 설렘과 긴장감을 한 스푼 더해준다.
아기가 커 갈수록, 내가 기록할 수 있는 글들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이야기다.
가끔은 손글씨가 쓰고 싶어서 일부러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더없이 좋겠다.
앞으로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나도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글로 힘을 주고 용기도 주고 싶다.
여권에 찍힌 도장을 한 번씩 들춰볼 때가 있다.
추억을 생각해 보듯, 다시 한번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내 글로 누군가의 인생을 톺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일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글의 힘을 믿으니까.
그 힘은 누군가에게 갈 때마다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니까.
시간과 때와 타이밍에 따라.
오늘은 어떤 글이 어느 때에 그대들에게 닿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