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inction of Experience
“Our faces buried in screens at the dinner table, blind to the world around us, and to each other. (from The Revenge of Analog).”
알람 시계 소리에 잠이 깨면 침대에서 살짝 뒹굴뒹굴 하다가 일어나서 운동을 시작한다. 짧으면 20분, 길면 1시간, 7월부터 매일 홈트를 하고 있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땀을 식히며 영어 원서를 소리내어 읽는다. 블루베리를 넣은 요거트와 진한 커피 한잔을 곁들이는 것 또한 나의 모닝 루틴 중 하나다. 집을 나설 땐 언제나 백팩과 함께 한다. 도대체 그 가방 안에 뭐가 들었냐고 다들 궁금해 하는데 별거 없다. 잡동사니들, 아이패드(외근할 땐 노트북까지), 그리고 책 한 권. 때론 e-book을 보기도 하지만, 종이 책 한 권은 늘상 가지고 다닌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귀로는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천국이 따로 없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몸이 찌뿌둥할 때면 서울 근교 산을 가거나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훌쩍 둘레길 원정을 떠난다. 둘레길을 걷는 이 시간만큼은 내 두 눈과 두 귀는 디지털로부터 해방이 된다. 둘레길을 걷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노트에 끄적끄적 느낌들을 적어내려 가거나 머리속에 맴도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본다. 사람, 차, 건물들이 빽빽한 도시 생활에서 적당한 거리유지(personal bubble)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심리적으로나마 개인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늘상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는 순간만큼은 personal bubble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이어폰이 필요없다. 하늘, 땅, 바다, 산, 길, 나무, 숲, 바람, 파도, 그리고 종종 마주치는 동물 친구들… 인공적으로 personal bubble을 만들려 애쓰지 않아도 온 세상이 내 버블 안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우리는 신체와 오감을 가지고 물리적 공간에서 세상과 접촉하며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경험들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손에는 마치 신체의 일부인 양 늘상 휴대폰이 들여져 있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대중 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공간 안에 머물러 있을 때도,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조차도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단 1초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디지털 기기와 교감을 시작한다. 디지털 매개체를 통한 상호작용과 간접적인 경험들로 우리의 24시간이 채워지고 있다.
팝업 스토어를 다니고, 맛집을 순례하고, 여행을 간다. 우리는 여전히 야외 활동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경험의 상당 부분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아보고, 사진을 찍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사생활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기 보다는 순간 순간을 캡쳐해서 파일로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길을 잃어버려도 구글맵이 있으니 걱정 없고, 자동차의 사면을 둘어싸고 있는 시스템이 수시로 삐삐거리며 주행 중 안전을 책임진다. 자율주행 모드로 바꾸고 살짝 한눈을 팔아도 된다. 마음 속에 새겨진 추억을 회상하기보다는 저장된 파일들을 보면서 기억을 소환한다. 몸이 기억하는 절차 기억과 장기 기억 능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디지털 장비들과 센서에 의존하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이러다 내 전화번호도 집주소도 기억하지 못하고, 디지털 디바이스가 없으면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같은 세상이 오면 구지 집 밖을 나갈 필요도 없다.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필터를 적용해서 내 모습을 살짝 왜곡한 프로필은 애교로 봐 줄 정도, 실제 장소가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온갖 능력치 아이템으로 무장한 멋진 캐릭터에 빙의한 나를 현실의 나라고 착각한 채로 중간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갈지도 모르니. 하지만 영화도 항상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값싼 디지털은 하층민이나 쓰는 거고 고결하신 분들은 여전히 희귀하고 값비싼 아날로그 감성과 오감을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 디지털은 한낮 도구에 불과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 가신다.
지금처럼 계속 스크린에 코를 쳐박고 있다가는 코 앞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자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고, 새로운 도구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고, 구매를 유도하고 사용을 활성화하여 도구에 의존하게끔 하는 마케팅 활동들 또한 계속 펼쳐질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게 한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디지털 사용을 제한했다고 하는데, 세상의 흐름에 구지 역행할 필요까진 없고, 스마트한 기기들을 잘 사용하는 더 스마트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능력자이지 않을까.
저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직접적인 경험의 멸종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들려준다. 그러나 내 예측으로는 경험의 멸종보다는 경험의 신분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을 탐닉하는 것처럼, 오히려 직접 경험적인 경험이 희귀 아이템으로 상품화가 되는 세상이 올 것 같은 씁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잘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하용하면 독이 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는 길은 내 스스로를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지 않을까? 어찌하다보니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한다고 디지털의 최극단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내 개인적인 삶만큼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상태를 추구한다. 디지털은 매개체일 뿐 사용자 경험이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고, 서비스의 가치를 더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같은 세상이 오면 모르겠지만 결국 디지털도 물질적인 매개체를 기반으로 연결성을 온라인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매개체를 이 온라인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사용자 본인에게 달려 있다. 자, 앞으로 1초, 1분, 10분, 30분, 아니 한 시간, 아니 하루, 아니 한달… 만이라도 디지털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내 스스로에게 이생망으로 가는 경험의 멸종을 선물할 필요는 없으니.
** 나에게 던지는 질문 **
1. 내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 디지털 기기나 디지털 서비스는 무엇이고, 그것들과 24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2. 이러한 디지털 기기나 디지털 서비스 중에 내 능력을 조금씩 깍아 먹고 있다는 것이 있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깍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
3.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나는 주로 무엇을 하나?
4. 종이 서적(책이나 잡지 등)을 읽고, 필기구로 글씨를 쓰고, 그림도구로 그림을 그려본 마지막 기억이 언제인가?
5. 회사 일이나 숙제 외에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등의 활동)해 본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6. 집을 떠난 공간(여행 등)에서 내가 주고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는 무엇인가?
7. 6번에서 사용한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없이도 가능한 생활은 무엇인가?
8. 내 오감만으로 유일하게 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아직도 스틱 자동차를 운전한다거나)
9. 디지털의 도움없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 또는 추억 이 있나? 어떤 기억 또는 추억인가?
10. 나만의 회복 환경 또는 활동이 있나? (휴식이 필요할 때, 생각을 정리할 때 찾게 되는 장소나 몸을 사용하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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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by 크리스틴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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