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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Mar 02. 2020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잇츠 오케이가 아니다.

마음껏 불행해했어야 했다.

말없이 술집에 앉아 빽빽이 잇츠 오케이를 필사하는 동백이가 말없이 슬펐다. 어쩔 도리 없이.


"이 두루치기 값에 제 손목 값이랑 웃음 값은 없는 거예요.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딱 술 술뿐이에요."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슴이 벌렁벌렁.

혼자서 기차역을 찾아 앉아있는 게 고작이다. 그것이 자신을 충전하는 방법이라 말한다.


공감이 갔다. 너무나.

동백이가 잇츠 오케이를 되뇌며 꾹꾹 눌러댄 건 분명 괜찮지 않은 마음이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동네 남자들에게 잡히는 손목은 당연히 괜찮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애꿎은 최면처럼 고작 괜찮다 되뇌는 것이 동백이가 그 일을 넘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고 있다. 그래야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다. 괜찮다....


달리 그 상황을 넘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가 않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나 또한 늘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었다.

자신을 기만하고 속이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책 한 권에서 나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방법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책 속의 그는 스웨덴의 상담전문가였고,

쓴이는 딸과 단둘이 스웨덴 살이를 하던 한국 사람이었다.


타지에서 심리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글쓴이에게 상담가는 근래에 일어난 객관적인 일이나 상황에 대해 물었고, 상담가는 어떠한 표정 변화 없이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했다. 끝까지 드라이하게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상담가는 글쓴이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당신은 지금 불행한 상황에 있고 그래서 불행한 거죠. 당신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지만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해요."


충격적이었다.

그래. 불행한 거였구나. 불행해하고 우울한 게 맞는 거구나.

충분히 힘들만했고, 전혀 괜찮지가 않은 일이었구나..


훅,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도 한때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 있었고,

그 상황에서 괜찮지 않은 게 당연했는데.. 왜 나는  자신을 정직하게 돌보지 못하고 마치 괜찮아야 한다는 듯 자신을 다그쳤을까. 지나왔던 모든 상황들이 명징하게 해석됐다. 나도, 동백이도, 글쓴이도 분명 잇츠 오케이가 아니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이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슬퍼할 일이 있으면 슬퍼하고, 불행한 일을 맞은 이에게는 힘들어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런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이고,

힘들어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위로한다.


동백이도 그랬어야 했다.

종국엔 촌놈 용식이를 만나 강해졌지만,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건 분명 괜찮지 않은 일이었고 부당했다.


다른 사람들 중에도 만약 괜찮다 최면을 걸며 불행한 일을 외면하는 이가 있다면, 이 글을 통해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약해서, 약해 빠져서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훌훌 털어내지 못할 만큼 상황이 불행했기 때문이라고.

잇츠 낫 오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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