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01 나의 주역 읽는 법
아주 오래전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마땅한 도구가 없었다. 과학적 지식이 빈천했던 시절이라 그들은 점(占)에 의존하여 현상을 설명하였고 이를 하늘의 뜻이라 여겨 합리화했다. 주역(周易)은 이러한 미토스(mythos)의 세계에서 탄생했다.
주역은 당시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자연현상인 하늘, 땅, 우레, 바람, 산, 연못, 물, 불을 기초로 그것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것들을 괘로써 유형화했다. 건(乾), 태(兌), 리(离),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은 주역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괘로써, 이 여덟 개의 괘는 유사한 특징을 가진 현상들을 대표하게 되었다. 건은 하늘, 태는 연못, 리는 불, 진은 우뢰, 손은 바람, 감은 물, 간은 산, 곤은 땽을 상징한다.
이러한 여덟 개의 괘를 서로 상하로 포개어 조합하면 64괘(8괘×8괘)가 만들어지는데, 이로써 단순히 8괘가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의 의미를 내포하는 한계를 뛰어넘어 64괘에서는 어떤 상황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괘가 상하로 포개지면서 상하(上下)관계, 선후(先後)관계 등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괘의 상(象)은 다양한 상황과 주제를 문장처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수택(水澤) 절(節)의 괘는 물과 연못의 괘가 상하로 놓여 있지만, 이를 조합하면 ‘혼란스러운 것(물)’을 ‘틀을 가진 것(연못)’이 가두고 있으니 절도(節度)가 있음을 뜻하게 된다.
이렇듯 8괘(소성괘)에서 진화하여 64괘(대성괘)으로써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조금 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8괘 하나하나가 여러 뜻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포개어진 64괘에도 중의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주역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모호한 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이끌었다. 샤먼의 언어에 차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언어가 더해졌다. 후대의 지식인들은 모호한 언어로 표현된 주역(周易)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당대의 지식을 동원했다. 중국의 동중서(董仲舒), 주돈이(周敦頤), 주희(朱熹)를 비롯하여 조선의 정약용(丁若鏞)에 이르기까지 공간과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은 주역에 합리적인 해석과 논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주역의 각주에 해당하는 전(傳), 의(義), 사(辭) 등은 시대마다 다른 사상들을 배경으로 주역의 괘에 첨부되었다. 그래서 주역의 각주들은 각 시대의 학자들마다 독특한 사상(思想)을 담고 있어 의미부여 방식이나 해석 방식이 서로 다르다.
나는 지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주역을 읽으며 지표 공간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지리적 현상들이 주역과 어떻게 관련지을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지리학은 지표 공간에서 나타나는 인문·자연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주역의 64괘의 상과 자연스럽게 부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역의 언어와 지리학의 언어를 서로 소통하고 융합하여 '주역에 대한 지리적 사(辭)'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리학과 주역의 우연적이고 실험적인 만남을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