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
1.
‘글을 쓰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을 품은 직장인들이 있다. 이들은 글쓰기 모임에 돈과 시간을 쓴다. 물론 이들에겐 글쓰기 말고 다른 욕망도 있고, 그래서 종종 글쓰기는 구실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무언가를 써낸다. 그 글을 돌려보고, 글을 통해서 서로를 마주 보길 시도한다.
2.
오늘은 어떤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이다.
“글을 보여주는 게 쓰는 것보다 더 어렵네요. 숨기고 싶기도 하고, 걸리고 싶기도 해요.”
“쓴다는 게 중요하죠.”
“저는 어쩌다 보니 본업에서도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온몸을 두들겨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머리도 아프고 치통도 올라오고 집 앞에 쓰레기를 내놓을 때보다 더 큰 죄책감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고요.”
“종종 친구의 블로그에서, 어설프게 숨겨둔 글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단어를 공들여 고르지 않아도 되고, 클라이언트나 지면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흠뻑 누리고 있는 글들이죠. 자유를 많이 품고 있는 글이 좋은 글 아닐까요."
"분명 그런 글을 쓰실 것 같아요."
"계속 쓰시는 것을 응원합니다.”
3.
마지막을 알리는 공지 글에는 댓글들이 길게 이어진다. 글쓰기 모임다운 뒤풀이다.
'선배들이랑 얘기하다가 제일 겁내는 게 뭐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용기가 없어지고, 시간이 없어지고, 마지막엔 좋아하는 것이 없어지는 게 겁이 나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도 이 두려움은 제 일상 한 편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제가 좋아하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굳이 얘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정말로 행복했던 때는 이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때라는 것도 아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왜 굳이 무언가를 쓰려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따뜻하게 대답해 주는 건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글인 것 같아요.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란 게 우리에겐 있는 거군요. 그 마음 덕분에 위로도 얻고 재미도 얻고, 결국엔 그 마음을 다뤄보기로 결심해 보기도 하는 거군요.'
'글 쓰는 동안에 머물게 되는 깊은 곳(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을 편안하게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온통 자아뿐이지만, 역으로 자아가 가장 흐물흐물해지는 그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퍼올리는 낚시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요? 서로의 무저갱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실패하는 게 기본값이지만, 아주 드물게나마 이걸 성공시키는 게 바로 글쓰기라고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 밤에 생각해 봅니다.'
'깜빡이는 커서를 지켜보는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유난히 오래 고민을 하게 되네요. 다분히 미신적이지만, 우리가 이 모임에서 서로의 시간을 한 조각씩 나눠가졌으니 또 서로의 글을 읽게 되는 날이 올 거란 생각이 듭니다.'
4.
이런 종류의 글쓰기 모임이 주요 서비스인 회사가 있다. 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어느 날 일기.
글을 쓰는 동안의 나와 회사에서 일하는 나. 둘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글을 쓰는 동안의 나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유행하는 농담을 읊는 나. 둘 사이엔 어떤 공통점이 있나. 글을 쓰는 나와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나 사이엔 얼마 큼의 거리가 있을까? 우리들은 서로 친할까?
오래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었을 때 느껴지는 낯섦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정확히 누구인지도 모르는 인물의 입을 빌려서 나도 잘 모르는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작업이 글쓰기라면, ‘솔직한 글쓰기’는 가능할까. ‘솔직한 인물’을 잘 연기하는 데 까지가 최선이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만들어내는 일회용품 같은 ‘나’는 참말을 할 줄 모른다. 그들 중 가장 솔직하다는 평을 얻은 이는 약간의 진실을 섞어서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낼 줄 아는 기술자다.
난 가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는 미리 약속해 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본가에 간다고 하고, 집에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하는 식이다. ‘나’들이 공모해서 내게 은신처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이런 걸까? 글 하나마다 자리를 잡고 서 있는 ‘나’들이 하고 있는 일이?
내가 만든 타인들. 거짓말쟁이들. 그들의 등 뒤 그늘에 숨어있는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느라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면 나를 갖고 노는 게 재밌어 죽겠다는 듯 눈을 빛내고 있을까.
무언가를 써보겠다고 펜을 잡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깊숙한 곳에 앉아있는 나의 표정을, 나는 모른다.
연재를 마치며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여기까지입니다.
월급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래 고민했는데,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월급은 사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에 실린 글들은 23년 겨울 출퇴근길에 쓴 메모들입니다.
아직 일을 하고 있고, 여전히 메모를 자주 합니다.
일을 잘 해내고 싶단 생각도 종종 합니다.
사소한 이유들이 작동을 하고 있나 봅니다.
글의 제목은 앤 카슨의 <짧은 이야기들>을 오마주 했습니다.
때려치는, 혹은 때려치지 않는 모든 결정을
인간으로서 응원하겠습니다.
읽는 마음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6. strangecowcow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의 무단 전재, 배포 및 AI 학습 이용을 금합니다.
-contact : lsw120227@gmail.com / https://strangecowco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