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감의 총합이다. 인생은 너무 짧다.
1
퇴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마감이 중요하다.
마감은 했으되 새 기획은 들어가지 않은 밤,
퇴근했으되 집에 도착하지 않은 휴일,
마감 직후의 시간엔 뭘 느껴야 할지 몰라서 또 뭔가 끄적이게 된다.
2
현자타임이라는 말이 있다.
절정 후의 허무가 '현자의 시간'으로 번역된다는 게 재밌다.
마감한 원고에 썼다간 빨간펜이 그어지겠지만
내 생각에 이 말엔 세상의 중요한 진실이 담겨있다.
욕망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 현자가 된다는 것.
그 짧은 순간을 제외하곤 우리는 욕망에 휘둘리는 멍청이들이라는 것.
하지만 욕망에 휘둘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자발적으로 열정적인가?
현자는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3
시나브로 마감이 쌓일수록,
계속 벌어먹고 살려면 현자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실천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헬스클럽에 가 쇠를 든다던가,
인공지능과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을 공부한다던가.
열심히 욕망을 욕망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이전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이 변화를 성장이라고 불러도 좋다.
4
마감을 마친 콘텐츠들.
업로드가 되면 누군가 댓글을 남긴다.
“현타 안 오나”
5
회사가 있는 동네에서
집이 있는 동네로 넘어가려면
대교를 건너야 한다.
이쪽을 보면 인생은 마감의 총합이다.
저쪽을 보면 인생은 너무 짧다.
글쎄, 어쩌면 인생은 충분히 길고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걸지도.
나는 마감을 좀 더 쳐야 한다.
어떤 혁신적 기술이 전 세계 인구의 96%를 실업자로 만들기 전까진.
집은 아직도, 아직이다.
-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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