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에 관한 짧은 이야기

회사 얘기하기 없기. 재밌는 얘기만 하기.

by strangecowcow


1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내부 행사 준비로 회사가 어수선한 게 마뜩잖아서 사무실을 슬쩍 빠져나온다. 밖에는 가장 친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커피 씨와 담배 씨. 내가 지금처럼 불손한 감정을 품을 때마다 기꺼이 같이 땡땡이를 쳐주는 고마운 동료들이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건물과 건물 사이 음지로 숨어 들어간다.


“개같은” 입이 거친 담배 씨가 다시 말한다.

“우리끼리나 한번 모여야죠” 커피 씨의 목소리는 따뜻하다.


휴대폰 캘린더를 비교해 가며 우리끼리 모일 일정을 잡고 사무실로 돌아온다.



2

저기 저쪽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는 담배 씨와 커피 씨. 이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또래다. 이십 대의 습관을 아직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삼십 대 초반. 인생의 어떤 챕터가 시작된 건지 끝난 건지 도통 모르겠는, 그래서 다짐도 마무리도 영 시원찮게 처리해 둔 채 커피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는 우리.


우리는 종종 침팬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침팬지였다면, 그들의 평균수명에 빗대어 보건대 지금쯤 우린 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우린 앞으로 살날이 너무너무 많다. 몇 번의 실패를 지나 우연히 같은 회사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연유로 친해진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여전히, 아직도, ‘어떻게 살지 존나 모르겠음'이다.



3

어느새 우리끼리 모이기로 한 금요일. 회사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술집에 자리를 잡는다. 커피 씨와 담배 씨는 자리가 파하면 곧장 고향에 내려간다고 한다. 평소보다 큰 가방을 자리에 두고 있는 둘 덕분에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온 것 같다. 술잔을 앞에 두고 자못 진지하게 다짐한다. 회사 얘기하기 없기. 재밌는 얘기만 하기.


하지만 우리의 얘기는 회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사람 싫은 사람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핥아주고.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건너갈 때엔 안주를 크게 한 입 먹는다. 술을 좀 마시고, 웃고, 안주를 더 시키고, 다시 회사 욕. 그러다보니 아, 얼마 놀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다 됐다!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는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도로변에 위태롭게 서 있다.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을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 시한부의 상황에서는 그래도 진실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점점 시한부의 상황에서만 진심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건 어째서지? 그 때 무슨 돈으로 샀을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스포츠카가 왜앵 소음을 일으키며 생각을 찢고 달린다. 우린 질세라 목소리를 키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려나-한 달에 백만 원만 더 벌면-아니면 제시간에 퇴근만 좀 잘해도-.


소망을 농담으로 써버리며, 좋을 일도 없는데 같이 웃고 있는 우리. 저기 택시가 다가온다. 모두 자기가 탈 차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눈을 찌푸린다. 헤드라잇을 받아 그림자가 길게 생긴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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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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