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돈을 대고 내일의 내가 보증을 선 값비싼 부재
언젠가부턴 방을 치우려 연차를 쓴다.
음식물 쓰레기. 뭘 이렇게 많이도 먹었나. 먹는 게 귀찮아지면 죽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버릇이 있는데, 난 나이 들수록 먹는 거 말곤 다 귀찮아진다. 자, 내다 버리자.
맥주 캔. 깜냥이 부족해 다 비우지 못한 캔들이 적당한 무게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변기에 남은 맥주를 따라버리다 ‘안읽씹’ 중인 메시지들을 훑어본다. 답하는 대신 변기 물을 내린다.
방구석에 쌓이는 먼지들, 살비듬들, 머리칼들.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고 새로 생기길 반복한다. 1년 정도가 지나면 1년 전과 동일한 세포는 단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일감이 된, 한때 나였던 세포들을 완전히 달라진 내가 치우고 있다. 내가 쌓인 방을 나는 왜 더럽게 여기는 걸까? 머리칼로 꽉 막힌 세면대에 용액을 부어둔다. 한 시간 기다린 후 찬물로 씻어내시오.
비로소 시간이 보인다. 출근했다면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을 때다. 오늘 쉬었으니 내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과거의 나를 치우려 미래의 나에게서 뺏은 이 시간, 역류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까.
잠이나 자자. 핸드폰 전원도 꺼버리고 나란히 눕자. 시간이 다시 익숙한 방향으로 흐르길 기다리며 내가 나라는 사실도 잠시 내려놓는다. 회사가 돈을 대고 내일의 내가 보증을 선 값비싼 부재. 세면대 속 찌꺼기가 녹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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