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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Jan 11. 2022

공든 탑의 심정으로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시작한 지 어느새 1년이 좀 넘었다. ‘집 나온 지 1년’이 무슨 대단한 기념할 거리는 아닌 것은 물론 알지만, 방을 옮기다 보니 생각이 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너절했던 지난 1년을 복기하며 부끄럼에 혼자 고개를 젓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지. 오랜만에 절에 다녀오는 김에”


엄마는 예전부터 종종 불공을 드린다며 절에 가곤 했다. 그렇다고 독실한 불교 신자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 종교를 물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교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믿지도 않으면서 그놈의 불공은. 무릎도 안 좋으면서. 불공 드린답시고 고생할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져 짐을 싸다 말고 캐리어에 걸터앉았다.


나는 어쩌다 밤낮으로 날 위해서 불공을 빌어주는 엄마랑 떨어져서 이 캐리어를 끌고 건조대를 피면 꽉 차는 좁은 방을 전전하게 되었던가. 사실 퍽 대단한 일은 없다. 우리 가족은 워낙 별 볼일 없는 소시민이어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몰락이 찾아올 틈도 없었다. 그냥 아빠가 나이를 먹어 정년퇴직을 했고, 다른 일을 찾다 보니 이사를 해야 했고, 나 역시 일을 해야하니까 회사 근처에 붙어있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건 그냥 귀찮게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식 성명서에 가깝다. 알다시피 공식 성명서는 사실이긴 하지만 늘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그것만으론 진실을 알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한 문장에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집을 떠난 이유에 대한 진실을 사실대로 말하자면, 엄마가 드리는 불공 때문이었다.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닌 엄마가, 무릎도 아픈 엄마가 드리는 불공의 모순됨을, 불공을 드리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천히 나빠진 우리 가족의 형편에서 드러나는 불공의 그 쓸모없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드리는 불공을 내가 현신해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사람들은 부처님과 행복을 직거래 틀 수 없기에 별 능력도 없는 돌을 쌓아 탑을 올린다. 그저 돌멩이였던 탑이 자기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의 소망을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돌멩이면서 공든 탑이었고, 공든 탑의 심정으로 차마 그 소망 위로 무너져 내릴 수 없어 도망가는 걸 택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우리 집은 극적인 요소를 길러내기엔 너무나 작고, 우리 엄마 역시 어디에나 있는 그런 엄마다. 내가 당신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고, 어디서든 내 할 일 잘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런 엄마. 내게 한없이 약해서 도저히 불화할 수 없는, 그런 착한 엄마.


내가 조금 더 능력과 자신이 있었더라면 자신보다 더 잘 살길 바라는 엄마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불화할 수 없음을 고민해 도망가기보단 세상과 맞서 싸우며 우리 가족의 몫을 주장할 배짱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아주 작은 꿈조차 겨우겨우 꾸고 있다. 1년 뒤 다음 방으로 갈 때 즈음엔 지금보다는 많은 돈을 벌고 있기를, 일주일에 야근은 세 번 정도만 하기를. 그 이상은 쉽사리 꿈꾸기 어렵다. 과연 이 만큼의 꿈으로 엄마보다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더 큰 꿈을 품을 수 없는 것은 나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대의 불행일까.


내가 문제인지 시대가 문제인지 고민을 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좀 넓은 공간에 있는 편이 낫겠다 싶어 거리로 나섰다. 새로 방을 얻은 골목은 어쩌다보니 스무 살, 매일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절어 저열한 대화를 일삼았던 바로 그 길과 끝이 닿아있었다. 처음 성인이 된 이후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 길에 있는 모두가 나와 꼭 닮게 느껴졌다. 이들 모두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가 나름의 방법으로 불공을 드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여기 이 골목의 우리 모두가 대단할 것 없는 돌멩이면서도 또 공든 탑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울고 싶어 졌다.


나와 비슷하게 취한 이들을 배경 삼아 오랜만에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가 가는 동안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하늘의 달을 봤다. 꼭 오늘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엄마도 저 달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하고 불공을 드렸겠지.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할머니도 엄마 잘되라고 불공을 드렸었느냐고, 엄마는 그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은 한 적 없느냐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질문을 까먹지 않으려고 계속 달을 쳐다봐야 했다.


 어 아들. 오늘 춥지. 엄마 이제 밥 먹고 쉰다. 그럼. 다녀왔지. 가서 아들 탈 안 나게 잘 지내라고 불공드리고 왔지. 그냥 하는 거지. 소용이 없으면 어떠니. 너는 너대로 잘 살고 엄마는 엄마대로 잘 살자고 하는 건데. 추워도 잠깐 창문 열어 놔라. 바람 들어오게.


자기가 바람을 보내 줄 것 마냥 창문을 열어두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다시 방 안이었다. 창문을 여니 방 안에서도 달이 보인다. 달을 보며 물어보려 했던 질문은 역시나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바람 들어오게’라는 그 말이 마음속 고민들을 다 날려 보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 엄마는 이제 돌 쌓는 불공을 그만두고 바람을 보내주는 불공을 드리고 있었구나.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잘 살자는 엄마한테 시비를 걸어서 뭐에 쓸까.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 아직 바람이 닿는 거리에서 도망을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가만히 캐리어 위에 앉아 시대의 불행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이 바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를 생각했다.


엄마가 드리는 공이 달에 가 닿으면 달은 바다를 당겨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고 그 밀물, 썰물은 또 바람을 만들고 바람은 내게 닿는다. 그러면 나는 불안하게 쌓여진 내 몸을 보며 더 높아질 수 없음을 절망하길 멈추고 바람을 쐬며, 더 높아질 순 없어도 이 이상 멀어지지는 말아야지, 그렇게 엄마가 드리는 공에 흔들림으로 웃어주며 나는 나대로 잘 지낸다고 답해야지, 하고 공든 탑의 심정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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