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위의 여자, 1981
영국 작가인 존 파울즈John Fowles가 쓴 원작 소설을 안다면, 그를 영화로 옮긴 <프랑스 중위의 여자The French Lieutenant's Woman>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영화가 한창 촬영 중임을 아무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첫 장면부터. 19세기와 20세기, 소설과 영화 그리고 영화와 현실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눈앞에 차례로 펼쳐지지만, 그 경계선을 초월해 우리가 영화에 몰입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나 집중력을 요하지 않는다. 방파제 위로 올라 선 안나가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 분장을 고치던 여배우는 자취를 감추고, 영화(속 영화)의 주인공 사라만 남으니까. 트릭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눈을 부릅떠 쳐다보는데도 깜빡 속아 넘어가는 마술쇼 같다. 잔뜩 찌푸린 해변과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여인의 케이프 자락을 말없이 지켜보게 만드는 현악 선율이 짙은 해무를 뚫고 귀에 스민다. 마술사 곁에서 티 나지 않게 시선을 앗아가는 미녀처럼 애잔한 멜로디가 이끄는 곳은 빅토리아 시대의 바닷가 마을 라임. 사소한 소문도 부풀려져 흉흉한 추문이 되고 마는 이 시대, 이 작은 동네에서 방금 아버지를 여읜 가련한 여인은 프랑스 중위와 놀아난 창녀로 불린다.
1960년대에 발표했으나 18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존 파울즈의 소설은 내용과 문체뿐만 아니라 그 지위까지 19세기 고전문학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카렐 라이즈Karel Reisz 감독은 원작에서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건네던 화자(話者)의 목소리를 지우고, 세 개의 다른 결말 중 하나를 선택한 대신 소설엔 없던 배우들의 연애담을 더했다. 그러니까 영화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소설 속 사라 우드러프와 찰스 스미슨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 인물들을 각각 연기하는 두 배우 안나와 마이크의 관계가 때로는 그 곁에 나란히 놓이고, 때로는 그 위에 묘하게 포개진다. 시대소설이 아니라 시대를 빌린 현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파울즈의 얘기를 듣고, 카렐 라이즈는 20년 뒤 극작가로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해럴드 핀터Harlod Pinter와 함께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얼굴 없는 주인공인 화자와 엇갈리는 두 개의 결말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이런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더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작을 접하지 않아도 재밌지만, 이미 소설을 접했다면 더욱 흥미로울 영화가 만들어졌다. 지휘와 작곡을 겸하는 음악가 칼 데이비스Carl Davis에게 이 영화의 스코어가 맡겨진 건 모차르트와 쇤베르크의 고전음악으로 가편집한 완성본이 이미 나온 후였다.
60년대부터 영화와 방송용 음악을 두루 작곡했던 칼 데이비스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영화음악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다. 오래된 무성영화에 새로운 음악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70년대 말에 기획된 영국 템스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시작된 이 작업은 8-90년대 칼 데이비스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그가 동시대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었나 보다. 시나리오와 빈 오선지를 번갈아 들추며 진득하니 음표를 그려나가기보다 마음속에 솟구쳐 오르는 찰나의 감흥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려 더 애썼기 때문이다. 카렐 라이즈가 영화 개봉 후 인터뷰에서 밝힌 말을 빌면, 편집한 필름을 들고 칼 데이비스를 찾아간 감독은 소리를 제거한 화면을 지켜보면서 어떤 장면이 작곡가의 마음을 건드리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피아노를 쳐 영상에 멜로디를 더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음악가의 모습이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피아니스트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랫동안 음악팬들의 은근한 사랑을 받은 사운드트랙이지만,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여느 영화음악처럼 귀에 익숙한 테마곡 하나를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마치 물 흐르듯 화면과 보조를 맞추는 음악이 무성영화의 그것 같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음악이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어려울 뿐, 영화 속에서 음악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 여럿 있다. 이를테면, 앞서 짙은 해무를 뚫고 내 귀에 스며들었다는 선율 'Sarah's Walk'가 그렇다. 사라의 사연을 짐작하기엔 아직 때 이른 오프닝에서 광포한 바다를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현악기의 위태로운 글리산도. 두 음 사이를 미끄러지는 현의 음이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 아찔함은 뒤따르는 애잔한 멜로디로 서서히 누그러진다. 여인의 헐렁하고 검은 두건으로도 다 감추지 못한 얼굴엔 우수와 두려움 그리고 욕망이 한데 서리고, 그녀의 낯빛을 처음 본 찰스의 가슴엔 또 다른 파도가 인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을 모델로 삼은 이 격정적인 선율은 '사랑의 죽음'이라는 부제가 달린 오페라 서곡처럼 비극의 정서가 깔려있지만, 동시에 묘한 관능과 열정 역시 깃들어있다. 미스터리한 여인에게 매혹된 찰스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바닷가에서 그녀를 만나 프랑스 중위에 얽힌 사연을 직접 들을 때 흐르는 'Her Story'에도 비슷한 기운이 감돈다. 소문보다 과학을 신봉하는 자연주의자 찰스가 청혼을 하고도, 또 다른 사랑에 그만 눈이 멀어 동요하고 있음을 그 아릿한 선율로 짐작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연기 연습을 하는 안나와 마이크가 교환하는 눈빛도 심상치 않다. 각각 가정을 꾸렸으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촬영하는 동안 가까워진 두 배우는 스캔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허나 라이즈 감독은 그들의 사랑까지 격정적인 선율을 깔아놓지 않았다. 아예 음악이 없거나, 있어도 정말 배경음악 같은 가벼운 팝 스타일의 멜로디만 흐를 뿐이다. 담담한 어조의 화자처럼 영화(속 영화)와 거리를 두기 위함일 터다. 영화를 보면서 미처 느끼지 못 했던 두 세계의 차이가 그 사운드트랙에 엄연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경음악이 불청객 같은 화자처럼 클래시컬한 스코어 사이사이에 불쑥 끼어든다.
한 앨범 안에 뚜렷하게 결이 나뉜 두 가지 스타일의 스코어 중에서 아무래도 좀 더 마음이 기우는 쪽은 고전적인 감각의 스코어.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19세기 낭만주의를 반영한 칼 데이비스의 로맨틱한 선율을 든든히 떠받치는 연주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대부분 자신의 독집 앨범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들인데,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콘서트마스터로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에리히 그루엔버그Erich Gruenberg를 필두로, 비틀즈의 'Yesterday' 녹음에도 참여했던 케네스 에섹스Kenneth Essex의 비올라, <카밀Camille>로 에미상을 받은 첼리스트 케이스 하비Keith Harvey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보유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존 릴John Lill까지 칼 데이비스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녹음하기 위해 당시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연주를 맡겼다. 연주자들의 이름까지 미처 살피기 어려운 영화음악팬보다 이 연주자들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더 사랑을 받은 이유다.
사라와 결혼하기 위해 어니스티나와 파혼을 무릅쓴 찰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홀연히 사라지는 순간, 마이크 부부의 초대를 받은 안나는 단란한 가족의 일상을 보며 은밀한 사랑을 이어갈지 고민한다. 사라에게 사랑은 답답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 자유를 얻기 위한 방도였지만, 이미 자유로운 안나에게 사랑은 여배우로서 자신의 평판에 오히려 해로운 구속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고 괴로워하던 찰스가 몇 년 뒤 사라와 재회했을 때 그는 불같이 성을 내지만 그녀를 향한 애정은 변함없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The Happy Ending'은 고달팠던 그들의 사랑에 행복한 마침표를 찍는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행복이고, 끝일까. 소설 속 사라와 찰스에게 도래한 결말은 곧 안나와 마이크에게 영화 촬영이 종료되고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등을 떠민다. 애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이 교차되면서 무뚝뚝한 엔딩 타이틀이 오를 때까지 칼 데이비스의 스코어는 멈추지 않는다. 무심히 울려 퍼지는 최후의 선율에 짙은 여운이 깃든다. 두 세계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를 전복시키고, 또 아무렇지 않게 봉합해버리는 영화음악의 여운이. 가공할 음악이 오히려 힘을 뺐을 때 가장 절정에 달하는 아이러니라니. 그래서 영화음악은 어렵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01 [01:30] Sarah's Walk
02 [02:06] A Proposal
03 [01:36] Period Research
04 [03:53] Her Story
05 [01:38] Decision Taken
06 [02:17] Toward Love
07 [02:23] Location Lunch
08 [03:53] Together
09 [02:12] Domestic Scene
10 [02:12] Resurrection
11 [06:17] A House In Windmere(Adagio From Mozart's Sonata in D, K. 576)
12 [03:35] End Of Shoot Party
13 [06:25] The Happ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