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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e Sep 03. 2015

숫자에 얽힌 기억 하나

[일상의 틈에서 잠시 바라보다 #1]

                                      

   경기도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 약 2년 정도 강의를 나간 일이 있다. 졸업한 지 한참 지났으나, 출강하는 동안 자주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요즈음 학생들의 모습과 나의 그 시절을 비교했던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형태의 추억을 지니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다만 개인과 개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연령대나 집단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바꿔보면, 동일한 추억을 지니는 연령대나 집단도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뭐, 어떠한 경우든 내게 고등학교 시절은 여러 측면에서 소중한 기억이자 시간으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에 출강하며 새삼 놀란 점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휴대폰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긴 고등학생뿐이겠는가.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요즈음이다. 이 휴대폰이라는 물건은 굉장히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또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학생들은 이 휴대폰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선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단지 친구들끼리 문자를 주고받는 것만이 아니라, 학급 담임선생님이나 과목 담당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직접 소통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급기야 카톡을 보내 과제를 문의하는 것마저 일상적인 듯 보였다).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많은 측면에서 변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잘 알는 사실이다. 그러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전화를 걸기 위해 짧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교에 몇 없는 공중전화 앞에 오래도록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선생님과의 대화나 교무실 출입 자체를 어려워하던 내 경험과 비교할 때 이는 엄청난 변화였다. 그만큼 시간도 공간도 내 기억과는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일 거다.  


  우리 세대도 윗세대와 달랐다. 지금 학생들이 휴대폰을 당연한 일상의 소품처럼 들고 다니는 것처럼, 내 또래의 학생들도 호출기를 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가끔 술자리에서 호출기와 관련된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그 호출기라는 물건은 참 매력적이다. 더러는 호출기 덕분에 공중전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호출기가 진동하면 공중전화나 전화가 가능한 카페 등으로 이동해 상대와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 짧은 기대와 흥분은 나 역시도 아직 기억한다. 아는 번호는 아는 번호대로, 모르는 번호는 모르는 번호대로 매력이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휴대폰으로 벨소리나 컬러링을 설정하는 것처럼, 호출기 사서함으로 연결되었을 때 들리는 안내멘트를 꾸미거나, 연락받을 전화번호를 찍을 때 자기만의 고유한 번호를 남기는 그런 '경험'들을 만들어준 것도 바로 호출기다. 휴대폰에 비하면 효율적이거나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더 큰 수고와 인내가 필요하고 동시에 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게 이 호출기 아닌가 싶다. 




  그 시기에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있다. 사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게다가 그 당시에도 만난 적이 없어 얼굴조차 전혀 모르는 친구였다. 이때에는 통신이나 호출기 등을 이용해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떤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친구 중 하나였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다들 조금은 날카로운 상태였고, 다만 서로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또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며 서로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던 시기였다. 그 친구와 전화 통화를 그리 자주 한 것도 아니다. 학교 쉬는 시간이나 새벽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 아래의 공중전화를 붙들고 안부를 묻거나 개인적인 감상, 안부 등을 서로의 음성사서함에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이 친구는 처음에는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남기더니, 어느 때부턴가 특정 숫자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호출을 하거나 메시지를 남기면 내 호출기의 액정에는 ‘010’이라는 번호가 떠올랐다(지금은 휴대폰 번호가 '010'으로 시작해 익숙하지만. 이 시기에는 그리 익숙한 번호가 아니었다). 숫자의 힘이란 신기했다. 그때부터 '010'이라는 숫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그 친구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숫자 '010'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자, 그 친구는 처음에는 쑥스러운 지 대답하지 않았으나, 내 재촉에 특유의 침착한 말투로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 0은 과거, 중간 1은 현재, 마지막 0은 미래야. 뭐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하고, 현재를 중요하게 보고 싶다는 말이지.” 

  “그거 멋진데? 나도 써도 돼?” 

  “응, 뭐 어때. 특허 낸 것도 아닌데.” 

  호출기에 찍을 번호 하나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던 그런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듯 말이다. 사실 나는 그 숫자의 의미를 친구의 말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잘못된 방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표면적인 말의 의미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어떤 것이 담겨있는지는 하나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표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말이다.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던 그 즈음이었을 거다. 나는 대학 진학이 결정되었고, 한 번쯤 그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연락을 시도했다. 친구의 음성사서함에 그런 내 생각을 남기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오질 않는 것이었다. 아마 서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기로 한 암묵적 약속을 깬 것 때문인 것 같았다.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는데, 우연히 그 친구가 다닌다던 학교의 학생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을 통해 친구를 수소문했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분명히 그 친구가 다닌다고 말했던 그 학교, 그 학급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느낀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체는 확인할 수도 없는 목소리와 '010'이라는 번호 하나로 남아있는 친구 녀석이기는 했지만, 시계 바늘이 회전하는 동안 시간을 함께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게 다인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억 하나와 '010'이라는 번호가 전부였다.


  처음 0은 과거, 중간 1은 현재, 마지막 0은 미래. 과거나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만 충실하고, 또 현재를 중요하게 보고 싶다는 것…… 


  그 뒤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친구 녀석이 자주 사용했던 그 숫자의 힘은 여전히 내게 ‘작용’하고 있다. 내 인터넷 아이디에는 꼭 ‘010’이라는 숫자가 들어간다. 처음 아이디를 만들 때에는 별별 생각들을 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그 의미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디 뒤에 꼭 '010'을 붙이는 것도 그랬다. 처음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 이후로는 습관적으로 그랬던 게 사실이다. 가끔 사람들이 내 아이디를 보고 묻곤 한다. '010'의 뜻이 뭐냐고. 그러면 나는 오래전 그 친구가 했던 말을 되뇌고, 대답한다. 그러나 입으로 '말'했을 뿐, 시간이 많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숫자의 의미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의미를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숫자 ‘1’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 

  요즈음 들어 부쩍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되도록 현재만을 보고 파악하려 하며, 과거란 현재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명한 경험이긴 하지만, 그것만을 갖고 확실한 근거인 마냥 현재나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시간이 서로 다른 빛을 띠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시간과 인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만의 관점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지 않는 것. 그런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지금, ‘1’이라는 현재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것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두 어깨, 그리고 가슴으로 느낀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한다. 한 시기를 공유하고 각자의 시간 한 귀퉁이를 관통했던 그 친구의 시간은 지금 어디쯤 왔을 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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