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과 사람이 있는 풍경 #3]
‘베네딕틴’이라는 술이 있다. 1501년 프랑스 북부 페캉 지역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술로, 약 27여 종류의 약초와 향초를 주원료로 하여 이것을 중성 주정에 침지한 후 증류하여 통에 숙성을 하여 만든 리큐르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리큐르의 하나이다.
베네딕틴 병의 상표에는 D. O. M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다. 이것은 라틴어로 Deo Optimo Maximo(최선을 다해 최대의 신께 바친다)의 약어인데, 처음에는 기도용 술로 사용되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일반인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베네딕틴을 마시면 허브와 벌꿀향이 오묘하게 뒤섞여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또한 그 맛과 향이 신비롭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 자체로도 신비롭고 매력적인 술이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술과 결합했을 때에 그 매력이 한층 더 빛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령 내 경우에는 베네딕틴 한 잔을 시켜놓고 카프리나 코로나처럼 향이 진하지 않은 술을 적당히 섞어 마신다. 그러면 시원한 맥주가 목을 넘어간 뒤 입 안에 달콤한 벌꿀향이 떠나간 누군가의 잔상처럼 남는다. 또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가게에 뛰어 들어가 베네딕틴과 브랜디를 적당히 섞어 만든 칵테일 B&B를 주문하기도 한다. 붉으면서도 황금빛이 감도는 그 술을 입에 대는 순간, 추위는 저만치 물러나고 마치 산장의 장작불 앞에 앉은 듯 따스함이 서서히 온몸을 감싼다.
“27여 종류의 약초와 향초를 주원료로 사용했다고들 말하지만, 아직 제조법은 극비래요. 코카콜라를 생각하면 돼요. 1%의 원료만은 극비라고 하잖아요.”
베네딕틴이라는 술을 알려준 것은 오래전 어떤 연말 모임에 나갔다 만난 한 친구였다.
당시 대학원에서 희곡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님의 연극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그녀는 교수님이 출강하는 다른 대학 연극학과 학생이었고, 개인 사정으로 휴학 중이었다. 교수님의 또 다른 제자인 셈이다. 나와 그녀 모두 교수님의 제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데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연령대가 꽤 높은 편이어서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게 상대적으로 편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1차 자리가 끝나고 2차를 가자며 움직이는 사이, 나는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선생님에게만 말씀드리곤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담배를 피워 물며 거리를 지켜봤다. 연말이어서 사람들은 다들 들뜬 분위기였고, 그것은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 환경이 그러하면, 그 세계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들도 덩달아 그러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게 싫다면 아주 무거운 추 하나를 품에 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추를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다들 덩달아 들뜬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는 거겠지, 아무튼……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학교 쪽으로 가세요?”
그럴 참이었으나 말하는 의도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서 있는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쪽에 제가 잘 아는 데가 있거든요. 가세요, 제가 한 잔 살게요.”
그렇게 그녀와 학교 앞까지 왔다. 그동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 아는 데가 있다며 데려가는 상황이 자주 일어날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택시가 멈추고 그녀가 다 왔다며 먼저 내렸다. 여기랍니다, 라고 말하는 그녀가 가리킨 곳은 나도 지나가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바(bar)였다.
잠시 뒤, 나는 바에 앉아 술을 마셨고,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내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따리 풀어놓듯 꺼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들을 정리하자면 - 그녀는 휴학하고 이곳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복학할 예정이었다. 교수님 공연이 있어 가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나왔다가 마침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잘하면 택시를 얻어 타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붙잡았어요. 기분 상하신 건 아니죠? 불쌍한 후배 도와준 셈 치세요.”
사실 불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학교 앞으로 와 가볍게 한 잔 더 할 생각이었으니까. 단 그녀의 당돌함에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급기야 이런 말도 하는 게 아닌가.
“대신 제가 한 잔 공짜로 드릴게요.”
작은 목소리로, 사장님께는 비밀이에요, 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특별한 술을 주겠다며 오래도록 고심한 그녀가 꺼내온 술이 바로 베네딕틴이다.
그 겨울, 나는 그 바에 자주 들렀다. 가게 사장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음악을 들었으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한 내 이야기도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속해 있던 극단 공연으로 가게를 그만두어야 했던 거다. 한 번은 그녀가 공연을 보러 오라며 표를 보내주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그녀는 한층 열정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나 바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에도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라 느꼈는데, 공연장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꿈을 향해 뛰는 그녀는 한층 더 빛나 보였다.
그 뒤로 여러 번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내 생활도 수시로 변했다.
급기야 어느 날 불쑥 짐을 싸들고 제주도로 가 약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내가 제주로 간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단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짐을 푼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그제야 내가 그 몇 년 동안 마음을 다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그렇듯 마음을 다치는 것은 사람의 문제였으며, 또한 나 자신의 문제였다.
어떤 일이었는지를 세세히 밝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또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원체 상처라는 게 개인적인 일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게 아닌 일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개인이 상처를 어떤 식으로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 시기 아마도 나는 그 상처를 다스리는 법을 몰랐거나, 감당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던 듯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만의 문제로 끝났다면, 그리하여 어떻게든 홀로 버텨나갈 수 있었다면 됐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견디기 위해 가끔 누군가의 어깨를 짚기도 했고, 마치 상처에 전염성이라도 있는 듯 어깨를 빌려준 이에게 전이되기도 했다.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웅크린 채 날카롭게 세운 가시에 다른 이들이 찔리기도 했던 거다. 그러한 일이 몇 년째 되풀이되었고, 그러한 시간의 연을 끊고 싶었다. 공간에 민감한 내가 시간의 연을 끊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을 통해서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평화로웠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그곳에서, 관광객도 토박이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물며, 고요하게 시간을 보냈다.
처음 얼마간은 낯선 곳에서 깰 때마다 바다 이쪽의 시간과 저쪽의 시간을 가늠하느라 혼란스러웠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낮은 주택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바다와 먼 육지에서 산 기억밖에 없는 내게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가끔은 한밤중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러곤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조바심 난 듯 서성였다. 결국 찬장의 그릇들을 모조리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고 세제를 풀어 다시 씻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된 음식들을 꺼내고, 하는 김에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지만 뭔가 찝찝한 음료를 꺼내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그릇을 씻는데, 흐트러진 호흡 사이로 쑤욱 들어와 가슴에 박히는 알 수 없는 감정들. 언제쯤에야 익숙해질지, 절망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빈자리는 제주의 풍경이 파도처럼 스며들어 채웠다. 그 시간들이 쌓이며 상처가 난 자리에 새살이 돋아났다.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도 마음의 평화가 되었다. 사람을 피해 온 곳에서, 사람이 내게 힘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경험은 침묵이었다. 내내 혼자였다. 길을 물어보는 것 외에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로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생각들은 엎치락뒤치락하다 스스로 차분하게 자리를 잡았다. 늘 관계를 맺으며 사는 인간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은 정말 외로운 시간도 찾아왔다. 더 난감한 것은 새벽녘 문득 눈떴을 때였다. 다시 잠들 수도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휙 빠져나간 것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서성였다. 그러면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내거나 컴퓨터를 켜고, 오래도록 그리워한 누군가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리고 또다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며 여전히 상처를 입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여전했지만,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제는 그 감정들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
오래전 그 바에도 종종 들렀다. 그런데 역시 영원한 것은 없는 모양인지, 그 가게는 곧 영영 문을 닫게 되었다. 짐을 빼던 날 사장님이 마지막 상자를 나르고선 가게 간판과 조명을 환하게 켜 놓고 새로운 주인이 될 남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잠시만 혼자 가게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몇 년을 이 가게 사장으로 있었는데,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네요.”
어쩌면 사람이란 변화를 대면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사실이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몇 잔의 베네딕틴을 마셨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주변으로 인해 혹은 나 스스로 마음이 들뜨거나 들썩일 때면 늘 베네딕틴을 마셨다. 그러면 어쩐지 지난 추억들이 하나의 묵직한 추가되어 들뜬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나를 지탱했다.
그리고 그 어느 날에도 나는 베네딕틴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카프리 한 병을 시켜놓고서였다. 연말 어느 날이었다. 한 해가 떠나가며 멀리서 찾아오는 새해를 발견하고 묘한 표정으로 손 흔드는 듯한 밤이었다. 마음이 들떴다거나 쓸쓸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의식처럼 조용히 베네딕틴을 마시며 한 해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는데 가게 한 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무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어디 다른 데서 한 잔 더 할 생각인 듯했다. 그래, 연말이니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며 술을 들이키는 찰나, 어깨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런 데서 보네요.
제주에서 그리고 평소에 외로움에 뒤척이며 깨어날 때마다 편지를 쓰곤 했던 당신이다. 예상치 못한 만남, 그리고 당황한 채 주고받은 대화. 이윽고 당신은 계단을 올라 겨울바람이 부는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고, 나는 당신의 뒷모습이 사라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조용히 술을 들이켰다.
그래, 이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고, 베테딕틴에 기억 하나만큼의 무게가 더해졌음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