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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Sep 25. 2018

망리단길이라 부르지 마세요

망원주민이 <이번 생은 망원시장>을 읽다

 

“좋은 동네 사시네요.” 


사는 곳을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반응에 ‘원주민’으로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표정을 숨길 수 없다. 애정하던 가게들이 없어지고 수없이 임차인을 갈아치우며 임대업자와 인테리어 업자만 배불리는 양을 오랜 동안 지켜봤으니 표정관리가 안 된다. 




고단한 서울살이 십수해 째, 용산과 서대문에 살다 성산동을 거쳐 망원동에 입성한 지 어언 8년차. 망원시장 권역에 산 지 10년이 되어간다. 물가 싸고, 한강 가깝고 비혼친구들이 많다는 이유로 입성했지만 나날이 오르는 집값과 몰려드는 사람들 덕에 은평으로, 파주로, 일산으로 탈망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외로운 혼밥족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재개발을 앞둔 다세대주택이라 월세가 5만원만 올랐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하고 있다.

 

지층이나 1층은 상가로 변신하니 주거공간 자체가 줄어들고, 고급빌라들이 들어서면서 싼 주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토박이 어르신이 가게를 지키던 마트는 모조리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장사하기는 더 어렵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망원2동의 상가도 150만원을 호가하니, 대박 나지 않으면 1인 자영업자가 인건비를 넉넉히 챙기기 어렵고 그마저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병원비와 약값에 밑지는 장사가 일쑤. 


언제까지 망원에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이번 생은 망원시장>이었다. 대표저자 최현숙씨는 한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였던 바로 그분, 최근에는 구술사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리고 9인의 여성 작가가 한 바탕 수다를 걸쭉하게 나누듯, 여성 상인들의 굴곡진 삶 타래를 글로 담아냈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이들의 삶은 ‘성실’이라는 두 음절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매시장을 왕래하며 장사를 준비하는 와중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고,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오전을 보내고 끼니를 대충 해결하면, 본격적으로 오후 장사가 시작된다. 짬짬이 단골들과 ‘스몰’이 아닌 ‘딥 토크’를 나누고, 옆 가게 상인들과 서로 화장실에 간 새 가게를 봐주며 때때로 어거지 생떼를 쓰는 진상손님에 시달리고, 고단한 일과가 끝난 후 잠시 술잔을 기울이거나 젬베 공연단이나 요가 수업 등 여성상인회 활동도 한다. 시장에서 함께 노동하지만 가사노동도 대부분 이들의 몫이다. 자신의 삶을 돌볼 겨를도 없이 장사에만 매달리던 이들이 연대의 가능성, 취미생활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된 계기는 바로 홈플러스 입점반대 투쟁이었다.  



망원시장이 뜨게 된 계기 


따지고 보면 망원시장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단체행동이 어려운 자영업의 생래를 거스르고 모두가 힘을 합쳐 대형마트의 입점을 막아낸 투쟁이었다. “합정동 홈플러스 개점에 반대해 ‘다 문 닫고 집회’와 ‘다 촛불 켜고 장사’로 전국 최초로 유통 재벌에 맞서 따낸 절반의 승리(서문 중에서)”가 있었던 것이다. 전국의 영세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시의원을 배출했고, 이 유례없는 사례는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연대와 대안의 모델로 자리잡았다.  


“무한 경쟁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어려운 거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죠. 경쟁하는 입장에서는 돈이 있는 사람들한테 돈이 없는 사람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그러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거죠. 대기업만 먹고살 게 아니라 국민도 먹고살게 열어줘야 하는 게 국가 아니에요? 다 대기업이 뺏어가버리면 서민들은 뭘 먹고 살라는거야. 대기업 기생충처럼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잖아요.” -종로연떡방 황성연 사장 인터뷰 중(87쪽). 


모두가 힘을 합쳐 절반의 승리를 거뒀지만 망원시장이 매스컴을 탈수록 임대료가 올랐고 지역주민보다 외지인의 유입이 늘어났으며 1인가구의 증가로 식생활의 변화가 잇달았다. 이런 변화 속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공동의 노력(상인회)과 개개인의 성실함으로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퇴직금이나 연금 등의 보장 없이 다음 달 치의 수입을 헤아리는 삶이 녹록할 리 없다.


“망원동이 의외로 이렇게 핫한 시장이 됐잖아요. 주변에 망리단길이 생기고 이러면서 집값이 많이 폭등했대요. 여기 가겟세도 이번달에 20퍼센트 이상 올랐어. (중략) 근데 장사는 더 안 돼요.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그래. ‘사람은 참 많은데 손님이 없다’ (중략) ‘아 좀 뭔가 변화를 해야겠다’ 하는데도 쉽게 안 되는 거야. (중략) 중앙대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녀요. 여기 시장 분들이랑 같이 가는데, 매주 여러 분야 교수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셔요. 그런 게 계기가 돼서 나한테 발전이 되자, 근데 여기서 그냥 꾸준히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에요.” -진양수산 이양희 사장 인터뷰 중(239~240). 


나와 이웃들은 망원(&월드컵)시장에서 상인들과 얼굴을 트고 정직한 물건을 정당한 가격에 치르는 ‘얼굴 있는 거래’에 익숙해지고 있다. 비혼가구인 내가 “엄마”라느니 하는 호칭에 민망할 때가 있지만 시장도 변화해가는 와중이고 이제는 카드를 내밀어도 타박을 듣지 않으며, 구매 후 배달서비스 등으로 편리해졌다. 그리고 이제 공동의 적, ‘망리단길’이라는 유령에 대처해야 하는 난제가 시장 상인들과 지역주민들의 과제가 되었다.

 

80년대까지 집중호우로 물에 잠기던 서민동네, 망원은 뜻하지 않게 핫플레이스가 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이 되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많은 서민의 주거지이자 일터이다. 내게는 오랫동안 거주한 서울의 고향 같은 동네기도 하다. 고단한 명절이지만 주 6일 근무하는 상인들은 1년에 두 차례의 달콤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의 가능성을 다시 목도하기를 바란다. 전통시장에서의 구매를 더 많이 하리라는 다짐밖에는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망리단길”이라는 이름 사용하지 않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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