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Feb 12. 2019

어느 소셜러의 살사 비기너 탈출기

바차타를 추러 갔다가 살사를 추게 된 사연

바차타를 추러 간 어느 날의 에피소드를 써봐야겠다. 잠깐, 바차타라면? 요즘 아주 핫한 그 춤 맞다. 허벅지를 부비적 한다면서 댄스 장면에 모자이크를 해서 올리고, 셀럽들이 입방아에 올렸던 춤. 근데 춤은 정말 춤이고 허벅지를 붙이는 건 신호를 받기 위함이니 스킨십이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어쨌든 이 글은 바차타가 아닌, 살사 이야기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남자: 살사 추실래요?

이은: 아뇨 전 살사 몰라요.

남자: 제가 잘 추니까 괜찮아요.

이은: 그래요...? (망설이다) 그럼 어디 한 번...


그리고, 처참하게 망.... (침묵) (민망) (다신 만나지 말자) (기타 등등)  


대략 이런 플로우를 두 세번 겪고 나니, 춤이란 리드를 받을 줄 알면 장땡이라는 믿음이 와장창 깨지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버렸다. 권투의 기본규칙을 모르고 링에 오를 수 없듯, 무릇 댄서라면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 홀딩에 자신이 없다면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낫고, 거절당하고 두 번 세 번 강권해서는 안 될지니. 춤이 망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의욕이 조금 과하면 균형을 잃거나 사람 많은 곳에서 넘어져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춤의 기본규칙을 잘 모르는데도 그럭저럭 춤사위가 되는 일은 상대가 초절정 고수일 때만 가능!!!  



지난해 여름, (용감하게 혼자서) 바차타를 추러 갔다. 바차타 베이직은 알고 있었고, 센슈얼 무브먼트(웨이브를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화려한 동작들)는 주크 댄스를 통해 접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사음악이 나올 때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것이 싫어서 살사를 배우게 되었다. 살사 특유의 흥겨움 덕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만, 구경만 하면은 재미가 ‘정말’ 없다. 어차피 춤이야 장르 무관하게 근 이십년 춰왔으니 사실 딱히 계기나 결심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 춤도 배워놓으면 언젠가는 써먹겠지 하는 마인드로 춤을 배운다고 보면 된다. 불혹에 접어들었으니 더 나이 들거나 관절에 무리가 생기기 전에 ‘소셜러’ 라이프를 즐기고 싶기도 했고.


살사를 처음 접한 것은 약 7년쯤 전이었다. 기본 스텝과 패턴(최소한의 약속 같은 것)만 잠깐 배우고 동호회도 없이 몇 번 추러간 것이 다였다. 그때의 베이직(On1)은 심지어 지금과 달라서, 어쨌든 반년쯤 전에 요즘 스타일(On2)의 살사를 시작해 지금은 초보 딱지를 떼는 중이다.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기에도, 춤을 습득하기에도 꽤 짧은 시간이라 지금은 그럭저럭 리드를 따라갈 정도로 춘다.  


살사는 사실 커플댄스 중 가장 지분이 크고 많은 이들이 즐기는 춤의 하나다. 이름만 들어도 정열적인 라틴음악이 떠오르고, 화려하고 섹시한 의상과 몸동작 같은 것들이 플레이될 만큼. 남미에서 유래한 라틴 문화는 다양한 타악기와 사랑과 인생의 애증을 노래하는 스페인어 가사 정도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폭이 넓고 다채롭다. 내가 추는 춤 중의 하나인 주크댄스도 브라질(람바다라는 춤)에서 유래한 춤인데, 대체로 라틴 댄스는 살사와 바차타, 차차와 메렝게 등을 포괄해 부르는 말로 댄스스포츠의 한 종목인 라틴과는 다르다.


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잘 걸을 수 있어야 하고, 또 잘 서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춤을 출 만한 몸의 상태, 척추의 직렬을 유지하면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근력과 관절의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시간 내내 서서 강습을 듣고 두세 시간 춤을 추려면 지구력도 필요하다. 춤을 추면서 길러지거나 나아지는 부분이 있고, 그럼에도 애초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


커플댄스는 상호 규칙과 룰이라는 암묵적인 합의로 추는 것이지만, 때론 규칙에서 벗어나 놀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살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딛고 모르는 사람에게 춤을 신청할 수 있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음악을 많이 듣고, 베이직을 연습하고, 기초 외에 패턴은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춤 영상을 많이 보면서 대략의 흐름을 익혔다. 그리고 음악과 호흡이 빠른 만큼 팔로잉은 최대한 여유롭게.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춤도 삐거덕거린다. 호흡이 어긋났다면 중간에 잠시 전열을 가다듬은 후, 다시 음악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초보니까,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자.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은 있었고,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 또한 초보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춰주면 된다. 커플댄스, 소셜은 잘 추는 사람끼리 추면 물론 더 재밌지만 어디서 어떤 파트너와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자신도 누군가의 품앗이 덕에 성장해왔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소셜을 추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이런 것들이다. 낯선 이와 손을 맞잡고, 춤을 시작하기 전의 작은 긴장을 미소로 흩뜨리면서 설렘인 척 하는 순간 같은 것. 아는 이와 춤을 출 때도 음악에 따른 사소한 변화를 조금은 다른 표현으로 변주하면서, 좋아하는 음악의 좋아하는 파트가 나왔을 때 아 잠시만요, 이거 좀 같이 듣고 가요. 라고 (몸)말을 건네는 순간의 느낌이 좋다. 그리고 아차,하고 어긋나 서로 다른 움직임을 했더라도 약간 이상한 합일 같은 것이 생겨서 풉, 하고 웃음 터지는 것도 좋다. 결국 기대와 어긋나는 모든 것까지도 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면서 난 이렇게저렇게~ 했는데 넌 저렇게이렇게~ 했구나 하고 무람없이 넘어가는 순간의 흐름 같은 것들. 그리고 이런 예측 못한 움직임들의 총합이 바로 커플댄스다. 내가 사랑하는 춤을 오늘도 잠시 짬을 내어 추러가야지.    

작가의 이전글 감정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