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완트 타다와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
14. 조드푸르의 실망한 여행지들
조드푸르에서 오랜 시간을 있지 않아서 인지, 유적지와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 중간에 있는 블루시티의 강한 임팩트 때문인지, 메헤랑 가르성 외에 갔던 유적지에는 큰 의미를 두지않았던거 같다. 메헤랑가르성 바로 밑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메헤랑 가르성에서 저기 멀리 보이는 자스완트 타다에 가려고 했다.
걸어거라면한 30분쯤 걸리려나? 많은 조드푸르의 블루시티와의 풍경과는다르게, 메헤랑가르성 뒤쪽으로 자스완트 타다를 가는 거리는 척박했다.사막이라고 하기에는 모레가 없고, 그렇다고 식물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것도 아니었다. 이런걸 사바나라고부르나? 미천한 나의 지리실력으로 조드푸르의 일부 자연환경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자스완트 타다로 뻗은 외길은 나에게 잠시 사색의 시간을 주기 위한 명상길이라 생각하였다.
길을 나서려는순간, 난 왜 이렇게 인도에서 인기가 많은걸까? 라는 생각이 들도록 수많은 인도인들이 자신의 오토릭샤를 타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찝접됐다. 이런 인기에 힘을 얻어 사색, 명상의 길을 가는 것을 양보하고 팬서비스 차원으로 오토릭샤를 타주기로 하였다. 물론 돈은 줘야지.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인기를 충분히 이용하여 협상을 하기로 했다. 내가 가려는 자스완트 타다와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를 모두 가려고 하는 것이다. 가이드에는 메헤랑가르성에서 자스완트 타다까지 20루피,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 왕복 120루피 총 240루피라고 하였고, 나는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까지보고 다시 사다르 바자르로 돌아오는 것을 하여 총 300루피를 주겠다고 협상했다.
보통 오토릭샤꾼의 일과는 언제 올지 모르는 보장되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고, 난 그걸 해결해주는 대신 저렴하고 오토릭샤를 탈 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오토릭샤 꾼도 완강히 거부를 했다. 그 비용으로는 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걸어가지 뭐 하면서 오토릭샤 꾼을 두고 자스완트 타다 쪽으로 발걸음을 했을 때, 오토릭샤 꾼은 비싼 나를 알아보고 마지못해 데려다 준다는 확답을 들었다. 이러한 밀고당기는 팬미팅(?)끝에 오토릭샤를 타고 금방 자스완트 타다에 3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자스완트 타다는 별거 없다. 사당이다. 말와르의 따지마할이라고 불리우지만, 뭐 그렇게 따지면 인도는 타지마할의 천국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봐야될 경치는 바로 이것인거 같다. 메헤랑가르성이 바라보는 조드푸르, 사다르바자르나 성 가가까이에서는 마치 메헤랑가르성이 주인공 처럼 사진을 찍고 올려볼 수 만 있었지만 이곳에 오면 메헤랑가르성이 조드푸르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자스완트 타다를 살펴보면서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휴식과 그리고 멍 때리기, 그리고 이쁜 정원에서 사진을 찍기 였다. 이곳의 이야기나 의미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에는 따뜻한 햇빛과 나름함이 적당했다.
사진을 찍기에 열중 했을 때, 인도 셋 친구들이 내게 다가왔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거다. 내가 외로워보였는지 아니면 비싸게 보이는 나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었었는지 나의 카메라를 가져갔다. 나보고 모자도 벗어보라고 해보고 매고 있던 카메라 가방도 달라고 해서 정말 멋있게 찍어주려고 노력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 DSLR을 사용할 줄 몰랐다. 찍은 사진들은 초점과 핀트가 엇나가 있었으며 제대로 나를 위한 사진으로 찍힌 것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심했던건 찍힌 사진에 나의 평상시 모습이 안보이고, 이상하게 잘 씻지도 못한 인도인이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는 머리는 떡이져 있었으며, 얼굴을 누렇게 떠있었다. 바로 인도여행 3일째 였지만 인도인으로 변신해 나가는 나를 볼 수가있었다. 나를 찍어주겠다던 인도인의 의도는 “니 모습 좀 제대로 봐라!”였나보다. 하긴 인도에는 전신거울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내가 어떤 모습인지는 사진을 통해서 보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그것조차 사진을 자주 찍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던 나는 여행중에 내 모습을 살펴볼 일이 많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여행중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내 눈은 나를 바라보는 일보다 내 주위와 환경을 보는 경우와 일이 많지, 제 3자를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비슷하게 실수하는 이유도 내가 남탓을 하거나 환경을 탓하지말하야 하는 이유도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며, 홀로 여행하는 단점일 수도 있을 수도 있다.
나를 찍어준 사진들로 잠시 사색에 빠지고 나서 자스완트 타다에서 정신을 타쳤다. 다음 목적지인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로 갔다. 조드푸르 중심지와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 오토릭샤로도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문제는 그렇게 먼거리를 간만큼의 보람은 없게끔 느껴졌다. 막상 도착하면 궁전 같은 건물인데 일부만 개방하고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호텔과 비슷하게 공개한듯해 보였다. 안의 내용은 박물관인데, 이건 메헤랑가르성 향후 다른 여행지에서 가게될 시티팰리스 등에서 보는 유물들과 비슷하게 생겨 아무런 감흥이 없다.
다만 여기 이 우메이드 바반 플래이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진다.
철없는 궁전. 1920년대 말. 라자스탄 일대를 휩쓸었던 기근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자, 당시의 마하라자 우메이드 싱 Umaid Singh의 명령에 의해 궁전 건설이 시작된다. 기근과 궁전 건설의 상관관계는? 기근에 맞서 국내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백성들에게 일거리 5,000여 개를 창출하기 위한 친 서민정책이었다고나 할까?
1929년 시작된 공사는 1945년에야 끝이 났는데, 정작 궁전 건설을 명령한 우메이드 싱은 새 집에서 2년 밖에 살지 못했다고 한다.
설계자는 영국의 건축가인 헨리 랭체스터 Henrry Lanchester로, 건축에 필요한 식자재 운반을 위해 임시 철도를 놓을 정도로 심혀을 기울었다고 한다. 20세기 초 인도의 현대 건축들이 그렇듯, 라자스탄/무굴풍의 장식과 르네상스 건물을 방불케 하는 이웃라인, 그리고 중앙의 엄청난 크기의 돔 Dome이 전형적인 인도.사라세닉풍의 건축임을 증명하고 있다.
1972년 인디라 간디 수상의 전임 마하라자에 대한 특권 철폐 이후, 먹고 살 길이 암담해진 마하라자들은 궁전의 대부분을 호텔로 운용하고 있고, 또 그 중 일부는 박물관으로 개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8년의 재임기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숙소로 꼽은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호텔로, 로비와 식당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비 투숙객에게는 개방조차 되지 않는다. ....(중략)
전명윤,김영남,주종원,[프렌즈 인도.네팔 '14~'15 개정판],중앙books(2014) p503
박물관을 들어서면 조드푸르 왕가 사람들의 생필품을 전시하고 있고, 와가사람들의 물컴, 식기 등의 아주 사소한 것들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놨으니,나에겐 전혀 감흥이 있을 턱이 있나?특유의 스토리나 감성을 느끼지 못한채 여기 오기 위한 오토릭샤에서 보낸 시간과 돈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다만 한가지 더 궁전 뜰 앞에 마하라자들이 사용하던 1930년대풍의 클래식 자동차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뭐 이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미련없이 우메이드 바반 팰리스를 나와 다시 사다르 바자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