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트렌드가 된 시대'에 사과가 위기관리의 전부라고 알고 계시지만
어떤 조직의 위기관리 평가 지표를 보았습니다. 언론 오보 대응에 대해 가산점을 주고 있었습니다. 오보 대응이란 오보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것이고 그것을 잘 대응했을 때 가산점을 주는 것이 일견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평가 기간 내 오보가 없었다면 오보 대응에 대한 가산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보가 없다는 것은 사전에 미디어와 좋은 관계 속에서 이슈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는 결과인데 말이죠. 오히려 오보가 없다는 것이 더 높은 가치인데 오보가 발생하고 그것을 대응해야 가산점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기관리를 크게 예방과 실행(대응) 그리고 회복으로 나눕니다. 위기가 일어나지 않게 평소에 내재된 이슈들을 도출하고 감지하고 관리하는 전략과 활동을 '예방'이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그것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위기관리 '실행(대응)' 영역입니다. 그리고 입었던 피해를 빠르게 복구해서 피해를 입기 전 혹은 그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이고 마지막 단계입니다.
'사과가 트렌드가 된 시대'에 언제부터인가 사과가 위기관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물론 사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잘하는 것보다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위기관리라는 거죠.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성공한 위기관리이며 최상의 가치입니다.
현장에서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바라보는 기업 내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이렇습니다. 위기가 없으면 최상위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너 뭐했냐"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과 시선이 돌아옵니다. 평시 이슈관리 주간 리포트나 월간 리포트를 보고할 때 아무런 이슈가 없어 공란이 많으면 괜스레 부담스럽습니다. executive summary에 '위해도 높은 이슈 없음'의 타이틀을 보고 있자면 담당자도 뭔가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찝찝합니다. '이슈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극단적(?)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위기가 일어나는 지점도 보통 위기관리 담당자들이 위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관리 담당자가 위기 대응을 잘 하지 못했다며 비난받고 심하면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경영진들이 위기관리를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성공하는 위기관리는 '모든 구성원이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오늘 우리 기업이 평온했다면 그간 위기관리 담당자의 노고와 함께 우리 구성원 하나하나가 맡은 일을 적시에 해서 오늘의 평온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