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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고 기록은 위기관리를 위한 부적이 아니다.

위기는 반드시 일어난다.

일본에서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보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다. 지진 자체는 자연재해라 막을 순 없지만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해야 할지, 아픔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희생을 줄이자는 것이다. 한국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20년 전 일어난 경제위기를 다시 돌아보면 앞으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재발할지 모를 다음 경제위기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7.07.29 01:00] ‘[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위기의 기억 너무 빨리 잊는 한국, 20년 지나도 계속 되새기는 일본’ 기사 중 일부


위기관리 시스템이 철저한 나라, 매뉴얼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도 위기는 반드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미국도, 유럽도 우리가 보기에 어이없는 위기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발생가능한, 발생한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와 다르다. 다시는 유사 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장기간 철저히 조사하고 그 위기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의 경우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위기도 매년 작은 행사로 기억하곤 한다. 반면교사를 통한 재발 방지에 철저하다.


과거 위기관리 시스템은 거의 모두 위기 발생을 막는 ‘예방(prevention)’에만 맞춰진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위기를 100% 막을 수 없었다. 사실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 이후 위기관리 시스템의 경향은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위기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가정 하에 위기 발생시 대응 방법과 피해를 최대한 완화시키는 ‘준비(preparation)’의 개념이 강화되었다. 2005년 미국 카트리나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대형 재난 이후에는 위기관리 측면에서 회복력(resilience)에 대한 고민과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위기관리 경향속에 ‘준비’의 개념은 강화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아직도 공허한 소리인 경우가 많다. 가끔 현실 속 기업 위기관리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작업’이라고 개인적 소회를 밝히기도 한다. 기업들이 발생할 위기들을 예측하고 준비한다는 것이 사실 여간 쉬운일은 아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개인 건강에 대한 위험요소에 대해 관리하라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한 번 대형 위기를 경험해 본 기업들은 분명 다르다. 이는 개인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 지각 있는 기업들은 위기를 경험한 이후 외양간을 고치는데 몰두한다. 다시는 유사 위기를 경험하지 않겠다는 혹은 유사 위기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용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는 반면교사이며 반드시 재발을 막겠다는 목적이다.


아직도 우리 기업은 예방에만 맞춰진 활동들이 많다. 흔히 우리 기업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무사고가 목적이 된 위기관리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사실 겁이 난다. 저 무사고 원칙은 대부분 언젠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위기관리 노력으로 무사고를 이뤄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또한 무사고에 대한 리워드와 존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과 노고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사고 자체가 위기관리의 목표가 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경미한 사고는 보고 되지 않고 무사고 기록에 영향을 미치는 실제 사고가 발행해도 축소되고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위기관리는 단순 기록관리가 아니다. 반면교사를 위한 히스토리 관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스포츠와 유사한 기록 관리는 아니다. 1년, 10년 무사고의 기록은 단 한번의 사고로 무너진다. 영원한 무사고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지속적인 무사고 자체는 계속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무사고 현황판은 위기관리와 예방을 위해 구성원들이 마땅히 해야할 것들이 올바로 준수되고 있는지 체크되는 상황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발생했던 위기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상기하게 만드는 기능을 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과거의 위기를 잊고 그 위기의 원인을 그대로 행하고 있지 않는지 정기적으로 돌이켜 봐야 한다.


위기는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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