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를 중심으로
흔한 서울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고향인 대전에서 살아가면서 왜 그렇게 신기한 일이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일이 이제는 모두다 이상하게만 보였고 내가 그동안 당연히 누리고 있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가 로컬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제주도와 다른 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가 왜 대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지 고민했습니다. 광역시급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유독 처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냥 대충 생각하면 그럴저럭 있을건 다 있는것 같은데 정작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없는 도시. 아...
일단 첫번째로 생각하는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항상 날이면 날마다 약속을 잡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바쁜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서는 뭐랄까 약속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려 할때 상당히 애매한 느낌을 느끼곤 합니다.
게다가 놀만한 장소가 몇군데 되지 않아서 정말 웃기는게 돌아다니다가 고향친구들을 만날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겁니다. 아니 무슨 운명적 만남도 아니고 그냥 걷다가 마주쳐요. 그만큼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이 희박한것이고 그곳으로 다 몰려들고 있다는 뜻이겠죠.
만날만한 장소는 있습니다. 카페에서 만나도 되고, 식당에서 만나도 되고, 술집에서 만나도 됩니다. 근데 뭐랄까 애매해요. 그러니까 그냥그냥 보통 장소는 나름 괜찮은데. 신라호텔이나 워커힐호텔, 포시즌스호텔 같은 그런 곳이 없습니다. 이태원 패션5 같은 분위기 좋은 그런 곳도 없습니다. 에어비앤비 빌려서 파티하는건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정말 서울에서는 골목마다 있었던 취향이 느껴지는 공간과 스트릿이 이렇게 진귀하게 느껴질줄은 몰랐습니다.
그나마 대전역 뒤쪽으로 형성된 소제동 거리는 나름 괜찮다했더니 익선다다라고 하는 서울에서 활동했었던 팀이 내려와서 시작한 거리였습니다. 그나마 그쪽이 유일한 성장동력이었던것 같은데 이제 철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앞으로 모르겠네요.
좋은 공간이 없다는건 뭐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느리긴 하지만 대전에도 갈마동 뒷골목 같은 괜찮은 거리가 생겨날 징조(?)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대중교통의 막차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겁니다.
저는 수원에서 살았고. 사당에서 살았고. 선릉에서 살았고. 다시 경기도 다산신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언제나 지하철 막차를 타고 움직였고 때로는 심야버스 같은것들을 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살때는 한번도 문제가 된적이 없었고 수원이랑 다산신도시 살때가 왔다갔다 움직였는데. 그래도 언제나 12시까지는 사람들과 같이 만나며 모였던것 같아요.
저녁8시쯤에 만나서 12시쯤에 광역버스나 지하철 타는쪽으로 이동한다음. 12시30분쯤에 막차를 타고가면. 새벽1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연속. 적어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관계맺고 소통하려면 4시간, 5시간 정도는 필요합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왔으니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대전에서는 뭐만하면 바로 버스탈 시간이 다가옵니다. 10시가 되면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그러면 보통 평일에 모일때 7시30분에서 8시가 적정할겁니다. 그 이상 일찍 모이기는 힘듭니다. 그럼 그때부터 2시간 정도의 타임리미트가 있다는건데. 사람들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면 2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메인모임을 2시간 정도하고. 다시 2시간정도 소통타임을 가져갈 수 있어야 사람들이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데 10시면 집에 가야 한다니 크. 아니 차가 없으면 대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게 대전에 있다보면 정말 사람이 없는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대중교통이 운행되려면 늦게까지 다니는 사람이 그래도 어느정도는 최소한 나와줘야 운행이 될텐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차를 갖고 있는 사람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고 대중교통이 이렇게 부족하다면 앞으로도 대전에서 어떤 문화가 생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차나 택시를 타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서울은 새벽2시, 3시에도 주요지역을 이동하는 심야버스가 있어요.
흔히 대전을 무슨 과학기술도시다 온천관광도시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솔직히 전 단 하나도 인정할 수 없군요. 현시대 과학기술도시를 논하려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기업이 지역에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판교정도는 되어야 테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블록체인과 같은 새롭게 일어나는 위험한 영역을 리스크를 감수하고 끌어안던가.
관광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전에서 저만큼 온천을 자주가는 사람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온천에 가서 사우나를 하고. 때로는 하루에 두번씩도 갑니다. 왜 이렇게 자주갈까요.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매우 많고 이제 카페에서 만나는게 지겨워져서 그냥 같이 온천에서 사우나하면서 온천에서 봅니다. 근데 이렇게 많은 구매경험을 가진 헤비유저급 소비자인 제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저에게 있어서 대전지역의 온천은 그냥 지역시민들을 위한 목욕탕일뿐입니다. 아니 해외나가서 정말 제대로 된 온천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공무원과 연구원들이 주요한 세력이 되어 이끌어가는 도시는 이미 도전이라는 개념이 자취를 감춘지 오래입니다. 대전시의 지하철노선이나 주요정책들을 보면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피해가고 돌아가고 하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합니다. 정치색에 관계없이 그는 정말 위대한 리더였습니다. 리더라고 하는 자리란 뭘까요. 본인이 이끄는 집단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설령 그게 위험을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을 설득시켜가면서 움직여야 하는겁니다. 설사 그게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일들을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필요한 일을 해야 되는 것이죠.
제가 어렸을때.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이렇게 결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과거의 성공경험은 점점 무의미해지는 모든 변수와 상수가 얽히고 설킨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람에 투자하고. 문화를 융성시키고. 혁신을 하는 지역으로 성장하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