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자살은 금기시되는 죽음이다. 자살한 기독교인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금기가 무색하게도 내가 속한 대한민국의 30대에게 가장 흔한 죽음의 원인은 바로 자살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함으로써 1위를 잠시 빼앗긴 적은 있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여럿 보아 왔다.
작년 겨울,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선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촉망받는 기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선배는, 짧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 상사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부고를 듣기 두 달 전쯤에 나는 선배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었다. 서로 사회생활에 바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가끔씩 얼굴 보고 살자는 뻔하디 뻔한 내용의 대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황망하게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입관식을 하면서 울려 퍼지던 선배 와이프의 울음소리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커다란 슬픔과 상실을 느끼면서, 장례식장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의 가족들은 이런 일을 겪게 하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절대, 자살 같은 건 안 할 거야. 하지만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두 번째 우울삽화와 함께 자살사고가 찾아왔다. 치료를 다시 시작했지만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동안 없었던 심한 불안증상이 생겼다. 하루 종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이 고통을 빠르고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자살은 크게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자살사고, 자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자살계획, 그리고 실행. (물론 충동적으로 세 단계를 한 번에 건너뛰고 바로 자살을 실행하는 사람도 있다) 자살사고는 수동적인 단계이다. 인간이 고통을 겪으면 당연히 이를 극복하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에 실패할 경우 마지막 탈출구로서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반면 자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는 과정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위한 행위이다. 특히 자살 실행을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야 하는데 의사의 경우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군에 비해 자살의 위험성이 높다고도 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첫 번째 단계인 자살 사고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브레이크가 걸렸는데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남아 있던 삶에 대한 의지 덕분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자살을 함으로써 나의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다르게 생각하면 만약 가족들이 없었다면 자살의 문턱은 한결 낮아졌을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여러 가지 징후를 남긴다는 연구가 있다.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라던가,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 마지막 인사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살사고를 겪고 있을 때도 미안함 때문에 이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얼마나 놀랄까. 괜한 이야기 하지 말아야지.
선배가 죽고 나서 나는 한동안 우리의 마지막 통화를 계속 떠올렸다. 짧지 않았던 통화에서 선배는 혹시 나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의 통화를 마치고 그는 혹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을 말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혹시 다른 결과가 있지는 않았을까. 오랜 기간 연락이 뜸했던 나 조차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선배의 가족이 앞으로 평생 가져가야 할 짐은 나로서는 짐작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자살사고를 겪고 나니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 말 없이 우리의 곁을 떠난 사람들은, 혹시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간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