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ys Mar 28. 2019

영리병원 논란에 국민건강보험이 같이 등장하는 이유

최근 사회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을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치적 상황, 내국인/외국인 진료와 관련한 법적 분쟁, 설립 의도에 대한 설왕설래 등 다양한 방향의 기사와 칼럼이 쏟아졌는데요,


오늘 주제는 영리병원이 왜 문제인지를 제 시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주의를 먼저 드리자면 영리병원 얘기는 거의 없이 국민건강보험과 사회적 합의에 대한 내용이 주야장천 나올 예정이니, 왜 주제가 바뀌었는지 놀라지 마시고 천천히 글을 따라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 설명서


저는 병원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직장근로자에 해당하면서 4대 보험을 납부 중인 분이시라면, 월급명세서 공제란에 [건강보험료]라는 항목이 있을 것입니다. 공무원이나 교원이 아니시라면 10만 원 내외의 적지 않은 액수가 빠져나가는 항목이지요. 2019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료는 [월급의 6.46%]로 산정합니다. 여기에 장기요양보험료를 추가하면 월급의 7% 정도가 원천 공제되고 있습니다. 300만 원 월급이라면 총 건강보험료는 21만 원 정도가 됩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국민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은 사장님이 직장근로자에게 무조건 가입시켜주어야 하는 의무보험입니다. 보험료는 가입자인 사장님이 절반을, 그리고 사용자인 근로자가 나머지 절반을 내게 되기 때문에 앞서 300만 원 월급 근로자의 경우 절반인 10.5만 원은 회사에서, 나머지 10.5만 원은 본인 월급에서 나가고 있습니다.


입원비와 비보험 검사비를 보조하는 민간 실비보험이 월 3~4만 원 정도 하고 암 발생 시 수천만 원을 지급하는 암보험이 월 2~3만 원 정도이니, 총 액수로만 보면 국민건강보험은 생각보다 비싼 고급 보험입니다. 게다가 국가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순수하게 전국민 의료 보장을 하기 위해 징수하는 보험료만 월 21만 원이니, 얼마나 많은 보장을 하고 있을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민간보험과 국민건강보험의 차이


보험이란 무엇일까요? 큰돈이 들어가는 사고나 질병이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수가 돈을 십시일반 모아 위험을 분산시키는 금융상품을 보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치료비 5백만 원짜리 질병이 100명에 한명 꼴로 발생하는데 누가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면, 위험에 노출된 100명은 한데 모여 5만 원씩 각출해 보험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험료 5만 원을 냄으로써 1%의 확률로 5백만 원을 잃는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한 일상을 보장받는 합리적인 방법이지요.


그런데, 실제 사회는 조금 다르게 움직입니다.


1)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100명 중에는 보험에 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1%의 확률이 너무 낮아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든가, 자신에게는 5만 원이 너무 큰돈이라든가 하는 그만의 이유가 있겠지요. 문제는 이 사람들이 보험을 거부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10명이 보험가입을 거부했다면, 나머지 90명은 5만 원이 아닌 5.6만 원을 내야 합니다.


덧붙여 시각차는 있겠지만, 돈이 없어 보험에 들지 못한 사람에게 5백만 짜리 질병 발생하되면 그 자체로 사회에 나쁜 영향이 발생합니다. 개인의 지불능력보다 의료비가 많이 나가는 것을 재난적 의료비 지출 catastrophic medical expenditure라고 하는데, 전체 사망률과 빈곤률이 높아지는 등의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부작용이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로 100명이 똑같이 5만 원을 내는 것이 맞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100명 중에는 연봉 1억이 넘는 사람도 있고, 전혀 돈을 벌지 못하는 어린이나 노인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똑같은 보험료를 내는 것이 맞을까요?


국민건강보험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에서는 소득과 자산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책정하며, 소득이나 자산이 없는 피부양자의 경우에는 보험료를 면제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민간보험은 위험회피만을 목적으로 하고 보험운영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입자의 사정이 아닌 위험도와 수익률에 의거해서 보험료를 결정합니다. 민간보험 가입 때 소득증명서를 떼서 차등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면 보건경재학 교과서에 등재될만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위험 확률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확히 누가 질병에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질병에 걸릴 확률은 100명에서 모두 똑같은 1%가 아닙니다. 자동차 보험료를 내보신 분이라면 차종, 안전장비, 운전경력 등 사고 위험에 따라 보험료를 따로 책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질병도 마찬가지인데요, 나이, 성별, 이전 병력, 가족력 등에 따라 질병에 걸릴 위험이 달라집니다. 질병 위험 예측은 보건학과 보험학에서 매우 중요한 학문이며, 최근에는 질병에 걸릴 확률을 정확히 추정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질병 위험 예측이 최신의 진보된 기술이고, 일반인들은 그 내용을 잘 알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위 [정보의 비대칭] 기술인 것이죠.


여러분이 보험회사를 차렸다고 가정하고, 수익을 얻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받는 보험료를 늘리면 되겠지만 그럼 가입낮아지게 되겠지요. 다른 방법으로 질병 발생 시 보험지급액을 교묘하게 뒤틀어서 백혈병처럼 확률이 낮은 질환에는 많이 지급하고 당뇨처럼 많이 걸리는 질환에는 조금만 지급하는 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가입자가 꼼꼼히 확인하면 들통이 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가입자도 알 방법이 없고, 불만도 발생하지 않으면서 수익이 증가하는 마법같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질병 발생 위험이 너무 높은 사람의 보험 가입을 아예 거부하는 것입니다. 위험이 높은 사람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면, 보험료를 다소 낮게 책정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할 일 자체가 줄어들어 수익이 개선될 것입니다. 이를 보험용어로는 크림 스키밍 cream-skimming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위에 있는 크림(건강한 사람들의 보험료)만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뜻이지요.


크림 스키밍과 같은 보험 가입 선별법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보험가입자들의 불만이 전혀 없고, 오히려 굉장히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보험회사의 욕구만이 보험 가입 거부 현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입자 입장에서 가장 큰 이익을 주는 보험은 무엇일까요? 앞선 100명 중 최신의 기법으로 계산한 젊은 사람의 질병 위험도가 0.5%로 낮게 나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많거나 기저 질환이 있어 2%의 높은 위험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요. 이 경우 보험료를 똑같이 5만 원씩 내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 손해가 될 것이고, 젊은 사람은 자신의 위험도를 보정해서 2.5만 원의 보험료만을 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만약 보험료가 5만 원으로 고정되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하겠지요. 이와 같이 가입자가 자신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과 보험료를 섞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을 음성 선택 negative selection이라고 합니다.




의료보험과 영리병원


여기까지 영리병원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영리병원 논쟁을 이해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국민건강보험의 특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영리병원은 투자자에 대한 배당을 목적으로 설립한 병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영리병원에는 국민건강보험에서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행 보험제도 아래에서, 영리병원은 경제적으로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병원에 방문해서 2만 원어치 진료를 받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현행 본인부담 진료비로는 7천 원만 내면 되는데, 여러분이 낸 건강보험료로 마련된 건강보험재정에서 나머지 1.3만 원을 병원에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강제 가입된 국민건강보험 덕에 2만 원어치 진료를 7천 원에 본 것이죠.


이에 반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에서 상대하지 않는 병원이기 때문에 같은 진료를 영리병원에서 받았다면 2만 원은 모두 내 돈으로 내야합니다. 같은 2만 원으로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료를 지급받는 대부분의 비영리/개인 병원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의무 가입의 국민건강보험이 있는 한은요.


만약의 경우라고 가정하고, 영리병원의 서비스가 가격에 비해 매우 뛰어날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달림에도 서비스가 뛰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삼성/성모병원과 같이 눈앞에 적자가 나더라도 긴 호흡의 전략으로 서비스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겠지요. 


이 같은 경쟁력을 갖춘 영리병원에 쉽게 갈 수 있고, 영리병원에서 모든 외래-입원-수술을 받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는 고소득층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받는 혜택이 전혀 없으니 차라리 보험 가입을 취소하고, 그 돈으로 민간 실비 보험이나, 향후 영리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민간보험을 가입하는 데 보태 써야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견 말이 안 되는 생각 같아 보이지만 소득 상위 10%의 1인당 평균 건강보험료가 25만 원이고 가입자인 회사가 대신 내주는 보험료까지 합해 월 50만 원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생각이 터무니없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행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건강보험을 자의로 탈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의 지역가입자와 외국인 뿐이겠지만요.


또 하나,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이 정부기관이 아닌 사회보험사라는 점도 생각할 부분입니다. 영국과 캐나다 및 북유럽 국가들은 세금으로 보험을 운용하며 운영주체도 정부 기관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매우 강력하고 중앙 집권화되어 있긴 하지만 엄연히 세금이 들어가지도, 정부가 운영하지도 않는 공공의 색체를 띈 보험회사일 뿐입니다. 비록 많은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처럼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평등한 국민 건강을 이루고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가입조차 의무가 아니라는 점과 세금과 별개의 보험료 산정 방식 등은 사회보험이 정부기관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적 결속에 의거해 전국민 의무가입과 당연지정을 기반으로 소득이 많을 수록 보험료도 많이 내는 국민건강보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제도의 특성상 사회적 결속이 약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에 대한 사회적 결속의 약화는 70년대 영국과 90년대 캐나다 등에서 발생하였고, 두 나라 모두 세금 기반 보험 국가임에도 매우 큰 사회적/정치적 비용을 초래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결속의 약화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만,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영리병원존재만으로도 사회 결속의 약한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은 1989년 건강보험을 전국민에게 의무가입화한 사건과 1998년 지역/직역별 나누어져있던 보험사들을 국민건강보험공단 하나로 통합한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전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역과 직역, 근로자와 자영업자에 관계없이 국가에서 관여하는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후자는 건강보험사들을 하나로 합쳐 엄청난 힘을 가진 단일보험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공공 건강보험이 그렇듯이 장점과 단점이 같이 있지만 국민건강보험을 향한 국민의 지지는 매우 높아 보입니다. 최근 십수 년간 영리병원, 의료산업화, 민간보험 확대 담론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국민이 얼마나 전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결속력이 끈끈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이 한편으로는 의료계와 제약사의 비용 증가에 맞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지출비용을 억제하면서 다양한 의료/건강 증진 욕구가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킨다니, 웬만한 사회적 결속과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신뢰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조심스레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80년대 이래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체제 경쟁이 사라졌습니다. 의료기관끼리의 경쟁을 통한 서비스 변화는 쉽게 느낄 수 있지만, 건강보험 체제의 경쟁이 사라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상충은 피부로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복제 약품 가격 책정, 약가 산정에 의한 국제 독점 약품의 철수(최근 고어사의 인공혈관의 경우 이례적으로 이슈화 되었습니다만), 고가 신약의 임의 비급여 문제 등 보험 독점 체제에 의한 논란은 쉽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실제로 피해를 입은 소수의 환자들도 분명 있어 왔습니다.


최근 고어 GORE(고어텍스의 그 고어입니다. 유명한 의료용 인공혈관 제작사죠) 사의 소아 인공혈관 철수로 인한 소아 심장 수술 지연, 리피오돌 lipiodol 철수로 인한 간암 환자 색전술 지연,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 옵디보의 보험 편입 지연 문제 등 보험재정의 큰 그림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최근 세간의 반응이 반사적으로 의료계와 제약사를 욕하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인 것도 주목할만한 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명의 보건학도로서 이번 영리병원으로 발생한 논란은 지켜볼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란이라고 할 만큼 찬성과 반대가 팽팽한 것은 아닙니다만, [전국민이 평등하게 건강할 권리와 선택 가능한 의료 서비스는 공존이 가능한가]라는 핵심논쟁은 여전히 유효하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피부로 맞닥트려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