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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Apr 18. 2021

Plastic Life

플라스틱과 삶

  종이 빨대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잇새의 종이 맛이 보기보다 노골적이라 토핑으로 종이가루라도 뿌린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평소 대단히 환경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지는 못해 반성하는 심정으로 종이를 맛보며 살았다. 정작 플라스틱 빨대보다 어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접했을 때에는 (종이 빨대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소 억울한 심정마저 들었지만, 아무튼 이젠 좀 썩어야 할 것이 썩질 않으니 문제는 문제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꾸준하다. 성큼 다가온 심각성을 표방하기라도 하듯 우리 자손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자, 라는 슬로건에서부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구를 이제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슬금슬금 변하고 있다. 몸을 반 갈라 열었을 때 그득한 플라스틱이 더 이상 동물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라는 소리다.


  그 온갖 플라스틱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21세기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일해야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냥 들숨, 날숨 하면서 사는 것 말고, 잘. 가끔 SNS에 자기자랑도 하고, 이런저런 돈 안되지만 즐거운 일도 저지르면서 그럭저럭 노년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살기 위해선 지금의 몇십 년을 투자해두어야 안정적일까, 뭐 그런 대화들. 90년 이후 출생자들은 100세 너머의 삶을 살 가능성이 50%라니, 백세시대가 단어 그대로의 뜻으로 다가올 때가 머지않았다. 100세로 향해가는 그 와중에도 의료기술은 그 너머를 향해 가고 있겠지. 

  정작 우리가 80세 정도 되었을 즈음에는 100세가 아니라 120세 정도를 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1세기 말의 퇴직 정년은 어떻게 될까. 출생률이 그렇게도 낮다니 그때즈음 되면 내 정년은 너무 잘 보장되는 것 아닌가 싶다가도 국경 하나 넘으면 마주할 수 있을 생기발랄 외국인 노동력을 생각해보자니 그냥 지금부터라도 외국어를 하나 더 배워야 하는 걸까 싶어 진다. 내가 그때까지 일을 할 수는 있을지, 이 직종이(아니면 그냥 단순히 내가)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21세기의 안내양이 되어버려 그 시절 되새김질하는 소설에서나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건 또 아닐지. 그리고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어떡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극단적이다. 아무튼 이 모든 가정은 하나의 고민에서 시작한다. 그전까지 살 수 있을 충분한 돈이나, 주거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까? 요양원에 가만히 누워 형체 잃을 정도로 으깨어진 식사를 하고, 침대 바깥을 벗어나기 위해 나 하나가 아닌 타인의 노력을 빌리게 되지는 않을 수 있을까.


  이 덧없는 망상이 그 정도까지 가닿고 나면 덜컥 두려워진다. 그리 성실하게 계획을 세워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종잡을 수 없는 삶이 보기보다 꽤 막연하게 와닿는 것이다. 어디 십 대 때에는 스무살 이후의 삶이 이럴 것이라 예측했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니라지만,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상향 중이라 공인받았을 때의 미래예측과 정반대 시기의 미래예측은 내겐 아무래도 다른 느낌으로 와 닿곤 한다. 시작할 때와 마무리 지을 때는 각기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이 맞을 테니까.


  일전에는 노년의 시기가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돈을 버는 시기보다 압도적으로 짧았다지만 이제는 그러질 못하니 자꾸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겨보게 된다. 20대의 1년으로 80대 이후의 몇 년을 살 수 있나? 수지타산은 맞나?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하루에 몇 시간씩 허비하는 출퇴근 시간을 시급으로 따지면 내 자취 비용보다 저렴할까, 뭐 그 비슷한 궤의 고민. 그렇게 한참을 튕겨보면 또 한구석이 쓰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돈 다 줄 테니 젊을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는데, 나는 지금을 바쳐서 늙은 후를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나 고민하고 있네. 




  아무튼 그 100세의 삶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의 20대에는 모두가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듯이, 지금의 100세와 그 때의 100세는 또 다를 것이다. 인생이란 한치 앞 모르는 일이니 정말로 다가오게 될 미래가 아닐 수도 있고, 혹은 이렇게 비관하던 것이 우습게도 대단히 순탄한 삶이 될 수도 있다. 십 대 때의 많은 고민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지금의 생각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 막연하게 믿어본다.


  그래도 이 생각에 변함은 없다. 그저, 마냥 오래가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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